노년의 그림자
노년의 그림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2023년이 등단 30년째,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글을 쓰면서 한 세대의 능선을 넘어 온 셈이다. 수필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은 결핍 때문에 시까지 내 문학의 둘레로 끌어들였다. 냇물을 건너다 목이 말라 두 손으로 물 한 움큼 떠 벌컥벌컥 들이켜 마신 격이다. 그렇다고 갈증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내게 적잖은 위안이 됐다. 문학의 영지(領地)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도했다는 의미다.

산문과 운문을 등가(等價)의 자리에 놓고 그사이 작품집도 똑같이 8권씩 상재했다. 솔직히 얘기해 평가받으려는 것은 아니나,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은 노역의 결실이었다. 수필에 다소의 파격을 입혀 산문집 1권도 곁들였고, 수필 작법의 저술도 하나 얹었다. 어찌 6,70권·100권의 작품집을 낸 시인 작가에 비할까. 이것만으로도 내 능력을 넘는 성과라 치부하고 싶다.

등단 30년엔 결실이 따르는 건가. 올해 들어 전에 없던 기별을 듣게 돼 적잖게 놀란다. 격월간 순수문예지 「문학秀」에서 연전에 출판한 제8 수필집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력》이 대상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는가 하면, 「좋은수필사」로부터 연중 실렸던 작품에서 뽑는 ‘우수작’ 10편에 당선돼 열 분 작가의 작품집을 발행하는 대열에 끼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또 한 무크지로부터 「좋은수필」에 실린 〈새의 뒤를 따르는 눈〉을 싣겠으니 수락해 달라는 메일도 받았다. 무크지의 비평적 기능에 관심해 온 입장이라 흔쾌히 응답했음은 물론이다. 또 하나, 일산의 고양문학회에서 초대작가로 선정돼 대표작 2편을 보내달라 한다. 고료가 나온다고 결산서까지 작성해 보내라는 것. 전에 없던 겹경사다.

공연히 들뜬 것인지 모르나, 내겐 뜻밖에 찾아온 사뭇 가슴 벅찬 일들이다. 2022년 한 해가 저무는 즈음에 생각지 않은 수확 앞에서 ‘등단 30년’을 되새기는 시간을 음미하고 있다. 다만 나이 듦인지 생각이 오래 머물지 않아 산만해지고, 몸이 쉬이 고단해 일상을 헤치고 나아가거나 오고 감이 편치 않으니 문제다. 기쁜 일에는 날개가 달릴 것이라 없는 힘을 한데 모아 날갯짓해야지. 내 문학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돌아보는 소중한 성찰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내가 나를 바라보며 할 말을 잃곤 한다. 언제 팔순의 고빗길에 이른 것일까. 머리가 흰 것은 오래된 이력이라 그렇다 치고, 뭘 조금만 만지작거려도 숨이 차고 집 안에서 화분 하나 옮겨놓는 데도 거치적거리는 이 한심한 내 육신. 그러니 내게 뭘 시작하자는 건 엄두도 못 낼 처지가 돼버렸잖은가.

언젠가 김형석 교수님의 백세의 삶을 쓴 탐방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어른에겐 보청기도, 지팡이도 심지어는 안경도 없단다. 2층에 방을 정한 것도 일부러 계단을 오르내리기 위해서라 함에 놀랐다.

나는 어른에 비하면 아직 청년인데도, 50줄 초로에 안경을 써 30년, 보청기를 넣고 산 지 서너 해가 넘는다. 얼마 전부터 이것만은 말자던 지팡이까지 짚고 뒤척이며 걷는다. 어른에게는 어른거리지도 않는 노년의 그림자가 내겐 너무 일찍 왔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턱없이 길고 깊고 짙다.

어찌할 것인가. 이왕지사라. 이렇게 돼가는 몸이니, 더욱 잘 달래고 부추기며 살아내는 수밖에. 늙어가는 몸을 다독이기 위해서도 내게 글쓰기는 버팀목이다. 등단 30년은 그만큼 유의미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