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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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 동화작가

“전 인천에서 왔어요. 구매 인증을 하려고요.”

햇살 좋은 한낮으로 기억되는 지난 시월 어느 날 젊은이에게서 들은 말이다. 난 주로 새벽 산책을 즐겨 하지만 가끔 한낮 도심 속을 걷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그날은 구도심을 걸을 요량으로 골목에 주차하고 남문 로터리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한산할 것으로 생각했던 로터리 부근은 의외였다. ‘아니 이 시간에 웬 젊은이들이지?’ 궁금해서 줄을 선 젊은이에게 물어보았는데 유명 푸딩 집이라 동남아에서 사러 온 젊은이도 있다고 호들갑이다.

푸딩은 달걀 우유 향료 따위를 재료에 넣고 익혀낸 서양 음식이 아닌가? 서양 음식에 왜 그렇게 열광을 하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온전한 젊은이로 인정을 받는다니 참으로 희한한 세상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프트파워 포켓몬스터가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킨 적이 있어서일까? 최근에 포켓몬 빵 할인행사를 했는데 새벽부터 줄을 선 사람들에 의해 순식간에 동이 났다고 한다. 향수를 좇는 선한 감성까지 편견으로 치부할 생각은 없지만 이제 사람들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좀비가 되어가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이것뿐 만이 아니다. 드라마에 나온 팽나무로 몰려가 긴 줄을 서 인증하질 않나 해시태그를 단 맛집으로 사람들이 몰려가질 않나 도무지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듯해 보인다. 알고리즘이 안내해주는 데로만 우르르 몰려갈 뿐이다. 정체성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으니 이 어인 일일까?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망과 촘촘히 묶여 있어 정신을 잃어가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소셜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사진과 동영상뿐만 아니라 강력한 알고리즘이 사용자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알아서 추천해 주니 젊은이들을 새로운 좀비로 만들고 있다. 아니 늙은이들까지 소셜미디어 좀비가 된 지 오래다. 아마 기댈 곳 없이 외로운 현대인들이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이렇게 인간을 좀비로 만들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안타깝다.

이제 정체성을 찾아야 할 때다. 푸딩을 찾아 인증을 하지 말고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하며 자기만의 삶을 영위해야 하지 않을까? 정체성을 잃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자아정체성을 잃은 사람들에게도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하는 말이다. 무언가에 이끌리지 않고 나답게 살아야 멋진 삶이요 아름다운 인생이다. 한평생 태어나서 좀비로 살다가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절기상 동지가 가깝고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있지만 이즈음 우리의 정체성까지 저물게 할 수는 없다. 새해에는 자아정체성을 찾고 자기만의 삶에 행복을 가득 채워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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