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소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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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새해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이렇게 시작되는 동요. 이미 어른이 된 아이들이 불렀던 유아 동요가 문득 생각난다. 계묘년, 올해는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한다. 흑백이 건네는 색깔의 의미를 잘은 모르겠으나 희망으로 기지개켜는 둥근 해를 떠올려 본다. 검은색 토끼가 흔치 않다는 생각에 혹시 상서로움일까하고 퍼즐 맞추듯 꿰어도 봤다.

새해, 이름이 바뀌었다 하여 여태 이어오던 일상이 확 바뀔 일이야 있을까만, 마음을 가다듬고 올해 마주할 긍정적 기운을 희망해 본다. 해가 바뀌면 유명 포털사이트마다 서비스차원에서 제공하는지 모르나 쭉 열거된 운세가 눈에 띈다. 심심풀이로 읽었던 것 중에서 유리할 것 같은 글을 대할 때면 몰래 마음에 심어놓을 때도 있다.

별 의미 없이 읽었으나 좋은 내용이면 의미를 부여해가며 반드시 그럴 것 같은 기분에 흐뭇해지기도, 또 애써 숨기듯 은근히 기대도 하지 않았던가. ‘동쪽에서 귀인을 만날 운’이라거나, 서쪽 방향에서 ㄱ성, ㄴ성씨를 만나 크게 도움을 얻게 될 운‘ 혹은 ’ㄷ, ㄹ성씨를 가진 사람을 조심할 것‘ 등.

이러저러한 일로 숱하게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동쪽, 어느 만큼의 거리에서 귀인을 만난다는 것인지 또, 그게 귀인인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귀인이건 조심해야 될 사람이건 알려준 성씨들을 많이 만나고 더러 밥까지 먹은 적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크게 도움을 얻은 성씨는 대체 누구였는지 아리송한 채, 해 넘기긴 여느 해와 엇비슷하다. 기대와 관계없이 해가 지고 달도 뜬다. 그렇게 세월이 술술 잘 넘어가는 것을 보면 모르고 지났을 뿐, 이러저러한 곳에서 귀인을 만났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해 본다.

살아가는 동안 내 앞에 처한 어떤 문제와 결과를 보며 ‘기칠운삼(起七運三)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반대로 ‘운칠기삼(運七起三)’이란 사람도 있다. 어느 말이 맞는지 모르나 처한 상황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옳든, 자기합리화를 위한 구실 찾기 든, 어차피 뒤집지 못할 일이라면 정신건강에 좋은 쪽으로 선택하는 게 맞겠다. 오죽하면 잘된 일에는 잘 된 이유가 열 가지고, 잘못된 일에는 안 된 핑계가 열 가지란 말을 하겠는가. 지나고 보면 거기서 거기란 또 다른 표현일 게다.

올해는 소소해 보이나 그 소소함 속에서 웃음과 따뜻함을 찾고 싶다. 휴일, 엊그제 일이다. 도심의 대로는 이동하는 차량으로 꽉 막힌 채 지렁이 지문 새겨놓듯 흐름은 더뎠다. 자동차 안 거치대에 올려 둔 액정 속, 며느리라고 친절하게 알리며 계속 호출이다. 잠시 한가한 곳으로 가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느긋한 며느리 목소리가 8음계의 솔과 라 그 언저리의 들뜬 목소리로 말을 쏟아낸다.

“어머니! 우리 아기가 오늘 처음 문장으로 말을 했는데 그게 ‘하미 집 가자’였어요.” ‘맘마, 타요, 엄마…’ 요런 두어 음절의 혀 짧은 소리만 하다가 처음으로 문장을 구사했다는 손주. 별것도, 별일도 아닌 것에 별스럽게 흥분을 감추지 못하여 호들갑 떠는 며느리와 그 호들갑마저 별일처럼 생각되고 별나게 좋아 듣는 순간, 행복 안으로 첨벙 빠졌다. 귀인은 이렇게 일상과 늘 가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계묘년, 거창하지 않아도 좋겠다. 곳곳에 따뜻함이, 소소한 것에서 웃음 가득한 행복이 배어 나오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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