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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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수필가·시인

새해가 밝았다. 작년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명분 없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이 전쟁으로 곡물가와 유가가 폭등했다. 세계는 배고픈 추운 겨울을 맞이했다.

우리나라도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야 간 정쟁만 난무하며 혼란스러웠다. 명분이 부족한 화물연대의 파업은 백기를 들었고, 서민의 발목을 붙잡고 1년간 시위하는 전장연도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명분이 부족하기 때문 아닌가.

나라, 회사, 노동자 모두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다. 수출입 경상적자가 계속돼 다시 IMF가 올까 봐 국민은 불안하다. 파업이 잦아지면서 수출 효자 품목들도 다른 나라에 빼앗기고 있다. 더해 북한의 도발도 걱정이다.

과거 우리는 국기가 게양대에서 펄럭이는 것만 봐도 가슴이 뭉클했고 애국가를 부를 때는 왠지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끼며 지냈다. 지금은 그런 국민이 별로 없다고 한다. 애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가수 나훈아 씨를 좋아한다. 그가 부르는 노래도 좋아하지만, 애국심에 반했다. 그가 저지른 동영상 하나가 기억에 또렷하다.

수많은 관객을 앞에 두고 일본에서 공연했다. 재일 한국인이 30%, 그 외는 일본인으로 꽉 메운 인파가 장관이다. 공연이 무르익고 그의 목소리가 일본 하늘에 울려 퍼졌다. 관객들은 열광했다. 공연 마지막에 ‘쾌지나칭칭나네’를 부르며 후렴은 관중이 하도록 유도했다. 그의 선창에 이은 후렴구의 의미는 선창에 대한 긍정을 뜻한다. 모두 일어나 몸을 흔들며 소리 질렀다. 그런데 나훈아의 선창엔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다.

“독도는 우리 땅”

“쾌지나칭칭나네”

“누가 뭐래도 우리 땅”

“쾌지나칭칭나네“

일본 수도 한복판에서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온 걸까, 그건 애국지사가 목숨 걸고 지키고 싶었던 애국심이나 다름없다. 극우단체의 항의를 받은 주최 측은 난리 났다. 그 말을 전해 들은 그의 한마디.

“와서 죽여 뿔라 하소.”

그 후 일본에서의 공연 요청은 전무 했다.

나훈아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비슷한 사연이 하나 있다. 모 봉사단체를 창립하고 사무국장을 맡았다. 독도를 두고 분쟁이 한창이라 일본에 대한 미움이 우리에겐 컸었던 때다. 회장이 일본 단체여행 계획을 잡아 따라야 했다. 몇몇 애국심이 강한 회원일까, 이런 시기에 일본 관광이 웬 말이냐며 동행을 거부했다. 하지만 준비가 마무리된 우린 떠났고 대마도에 도착했다.

이국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일본에서 신성시하는 인물들을 봉안했다는 신사를 둘러보게 되었다. 해설사의 일본 우월주의 설명을 듣다 보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플래카드를 펼치고 신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때다. 모두에게 주먹을 쥐고 ‘독도는 우리 땅’을 세 번 외치자고 제안했다. 퇴임한 고위급 공무원, 교장 선생님들이 대부분인 단체였다. 생각이 깊은 분들이니 당연했겠다. 신성한 곳에서 그건 아니라며 몇 사람은 거부했지만 내 선창에 대부분 따라 외쳤다.

그 후 불참했던 애국자(?) 회원들은 더욱 내 편이 되어 주었다. 그들이 불참했던 불만을 해소해준 명분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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