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면기(冬眠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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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하는 일을 지속 가능케 하려면 쉼이 필요하다. 오래 삶을 누리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쉬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싫증으로 효율이 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몸에도 빨간불이 켜진다. 이걸 조금 확대해석하면 장수를 누리기 위해서는 몸을 혹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일과 신체의 조화로운 질서와 관계 유지를 위해 의당 해야 할 것이 쉼의 실행이다.

여기엔 과감한 결단이 따라야 한다. 크고 작은 사정에 휩쓸려 미적거리거나, 미루어 안되는 것이 쉼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한데 놀라운 것은 사람이 해내지 못하는 이 쉼을 동식물이 해낸다는 극명한 사실이다. 도긴개긴 하지 않고 또 미적지근하게 질질 끌거나 하지 않고 명확히 이행하는 것이 우선 몇몇 동물의 겨울잠이라는 쉼의 방식이다.

뱀, 개구리, 박쥐, 고슴도치 등. 그들은 겨울 석 달 동안, 일체의 활동을 중단하고 휴지기를 갖는다. 땅속에 웅크리고 앉아 겨울 한 철을 보내는 것이다. 이 종들은 자기 생리를 계절에다 맞춰 왔을까. 해마다 반복하면서도 어김 없이 살아가니 놀라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인간으로서 그들을 미물이라고 나무라지 못한다. 영특하잖은가.

오래전 늦가을, 한라산 등산길에 연못가에서 쥐 세 마리를 삼켜 꾸물대고 있는 독사를 본 적이 있다. 팅팅 부은 몸이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 그러나 녀석은 겨울잠에 들기 위해 넉넉한 식량을 확보해 놓은 것이다. 여린 가을볕을 즐기는 모습에 해칠 생각 따위는 도무지 나지 않았다. 그도 생명 아닌가. 녀석, 땅속에서 느긋이 먹이를 축내가며 한겨울의 쉼을 즐겼을 것이다.

일에서 풀려나 푹 쉬면 회복되는 게 심신의 활력이다. 동면에서 갓 깨어나자마자 냇물을 첨벙이는 경칩의 개구리를 보라. 육상 선수 같은 점프는 생동감의 극치다. 쉼은 생명을 용솟음치게 하는 최상의 에너지다.

난초도 겨울엔 흙이 잘 마르지 않으므로 10~15일 간격으로 물을 준다. 물을 좋아하는 그들도 겨울엔 물을 내린다고 한다. 여름 가을에 활발히 활동했기로 겨울은 모자라는 걸 갖추는 계절이 되는 셈이다. 낙엽수만이 아니다. 상록수도 겨울 한 철 성장을 멈춘다. 긴 쉼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다. 이른 봄 새움을 틔우는 나무들의 활기찬 모습이 거저 나온 게 아니다. 겨울 한때 나무들의 정체(停滯)는 내년을 살아내기 위해 지금 모자란 것을 채우려 모자람을 갖추는, 없어서는 안될 시간이다. 쉼은 소중하다.

산문의 승려들에게도 쉼의 시간, 수행으로 불심의 허한 데를 채우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안거(安居)한다.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하안거, 10월 16일부터 1월 보름까지 동안거. 스님들이 한곳에 모여 도업(道業)을 닦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바깥 출입을 일절 삼가고 좌선으로 수행에만 정진하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 일에 치대어 산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가 더 좋은 삶이 되기를 염원하며 죽기 살기로 일에 매달린다. 몸의 소진과 정신에 내습해 온 스트레스 따위를 외면한 채 일의 성취에만 집착한다. 결국 몸도 마음도 신음하기에 이른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겨울 한 철을 동면기처럼 살면 어떨까. 이제 계묘년이다. 앞으론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일은 하되 리듬을 살리면서 하자 함이다. 겨울잠은 못 자더라도 웬만큼 하자. 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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