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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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 논설위원

토끼의 고어는 톡기, 15세기 표기로 톳기라고 한다. 한자 토(兎)는 토끼를 나타내는 상형문자로, 토끼가 쭈그리고 있는 모양과 뒤에 꼬리를 남긴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둥근 달을 볼 때마다 달나라에 살고 있다는 항아를 떠올리게 된다. “항아가 달로 달아났다.”라는 서한 시대의 항아분월(姮娥奔月) 고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항아분원’ 고사에 의하면 ‘궁수(弓手)의 신 예(羿)가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구했는데, 그것을 예가 먹기도 전에 그의 아내 항아가 몰래 먹고는 선녀가 되어 훨훨 날아서 월궁(月宮)으로 들어가 여신이 되었다.’

이후로 수많은 시가(詩歌)에서 달나라에는 항아와 토끼가 살고 있다고 노래했다. 이것이 불사약을 먹은 항아의 고사와 섞여 곡식이 아닌 불로장생약을 찧는 두 마리 토끼의 모습으로 변해 고구려 고분벽화와 조선시대 민화, 문자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민담에서 토끼는 작고 귀엽지만 매우 영특하고 착한 동물로 그려진다. 토끼는 상대적으로 덩치가 크고 힘이 강하지만 우둔한 동물에게 저항하는 의롭고 꾀 많은 동물로 상징되기도 한다. 호랑이를 속이고, 자라를 골탕 먹이는 토끼가 그런 캐릭터다.

또 신화에서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속임수를 쓰고,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나 토끼는 원래 겁이 많은 약자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놀란 토끼 같다.’는 말은 토끼의 행동에서 파생된 말로서 행동이 경망스럽고, 남모르게 저지른 일이 염려돼 스스로 겁을 먹은 모습을 빗댄 것이다.

생리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옛날, 토끼는 수컷이 없어서 암컷이 달을 보고 배태한다거나, 암토끼가 입으로 새끼를 낳는다고 믿기도 했다. 토끼는 매달 뜨는 달과 연관해서 여성과 관련있는 동물로 여겨왔다. 달의 주기와 여성의 생리 현상과 연관 있는 것으로 보아 달-여성-토끼라는 담론이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토끼는 벽사와 다산을 상징한다. 토끼는 뒷다리가 튼튼해서 잘 뛰므로 사기(邪氣)로부터 달아날 수 있고, 귀가 커서 장수할 상(相)이며, 윗입술이 갈라져 여음(女陰)을 나타내니 애를 많이 낳을 수 있을 것이고, 털빛이 희어서 아름다운 선녀를 나타낸다.

16세기 이탈리아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동물들을 많이 관찰했는데 그중 토끼에 대해서 “겁쟁이 혹은 비겁-토끼는 항상 두려움으로 벌벌 떤다. 가을날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에도 놀라 정신없이 달아나곤 한다.”고 말했다.

1502년 독일의 화가 알프레드 뒤러가 그린 <산토끼>는 단일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 중 최초의 그림이다. 부드러운 털, 눈동자에 비치는 창문 그림자의 디테일, 소리를 감지하는 듯 쫑긋하게 세운 귀,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것 같은 자세에서 생동하는 동물의 활력이 느껴진다. 이 그림은 산토끼를 세밀하게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과거의 위대한 미술가들은 실물과 똑같이 그리기 위해서 엄청난 끈기와 노력을 쏟아부었다. 미술사가 곰브리치는 “뒤러의 산토끼를 그린 수채화 습작은 가상한 끈기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뒤러가 이처럼 자연을 완벽하게 그리기 위한 기술을 구현하고자 한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경의 삽화를 유화와 동판화, 목판화로 더욱 생생하게 그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기교도 예술가의 정신세계를 강렬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지고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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