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돋이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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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새해 첫날 해맞이하러 원당봉을 향했다.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한 해의 소망을 헤아리고 나 자신과 다짐하고 싶었다.

아침형 생체 시계는 어김없이 네 시쯤에 나를 깨웠다. 평소처럼 샤워하고 기도하고 간단히 혼자 아침을 먹는다. 그리곤 종이 신문을 읽고 인터넷을 열어 다양한 뉴스와 정보를 훑어보노라면 아침 걷기 시간인 여섯 시가 다가온다.

이번엔 걷기 대신 오랜만의 해돋이 구경이라 10분 일찍 지팡이 하나 준비하고 잠시 차를 몰았다. 원당봉 먼발치에 주차하고 진입로로 향하는데 경찰들이 차량 진입을 막으며 해맞이객을 안내하고 있었다. 청장년들은 가뿐히 오르막길을 걸어가고 나는 달팽이걸음으로 쉬엄쉬엄 걷는다. 군데군데서 경찰과 삼양동 관련 단체 회원들이 안내하는 걸 보며, 이태원 참사에서 얻은 안전에 대한 교훈이 긍정으로 스미는 현장을 목격했다.

문강사 마당에는 몇 개의 천막이 설치되었고, 부녀회와 청년회에서 커피와 녹차 그리고 국수를 제공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나는 카페인을 멀리해야 하고 아침을 먹은 터라, 맛보지 못했지만 뭉클한 포만감이 일었다. 나눔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사람들은 천 조각에 새해 소망을 써서 줄에 매달기도 했다.

일방통행 안내판을 따라 오른쪽 길로 정상에 올랐다. 이미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해돋이를 잘 볼 수 있는 앞쪽에 섰다. 멀리서 차량 행렬이 붉게 어둠을 헤치며 달린다. 해돋이 명소 성산일출봉으로 향하고 있을 터, 저렇듯 새해 소망도 끝이 없으리라.

내겐 올해 특별한 계획이 없다. 다만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것, 그것뿐이다.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영상이 내 생각을 화들짝 일깨웠었다. 40대에 감전 사고로 두 팔과 오른발 종아리 아래를 절단한 주인공 이야기였다. 왼발로 글자를 쓰고 밥을 먹고 젓가락으로 멸치를 집기도 했다. 뿐인가 걸레질하고 빨래를 정리하기도 했다. 그리되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절망의 과정을 이겨냈을까 쉬 상상이 되지 않았다. 강의를 듣는 그는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노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삶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임을 보여주다니, 긍정의 화신이었다.

그렇다. 평범한 나날이 행복이다. 주변에 있는 소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캐면 충분할 테다. 분명 누군가는 숨 쉬는 것만으로도 기쁨이라 말할 것이다. 사실 조건 없이 행복해지는 것, 그게 진짜 행복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라 한다. 나는 아내에게 패한 적이 거의 없으니 참으로 무정한 사람인 것 같다. 이제 나이 들어 다툴 일이 무엇일까만 행여 맞닥뜨리면 얼른 손들어야겠다. 세월 따라 미운 정도 곱게 채색되는 것을.

아무리 초연하게 살아도 기본적인 의식주는 해결해야 하는데, 다들 삶이 어렵다니 걱정이다. 고난을 이긴 밥만이 진정한 자기 삶을 일으켜 세운다고 어찌 말하랴. 그래도 일어서야 하리. 국가와 사회가 안정과 평화 속에 원만한 경제활동이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일출 예정 시간보다 10분쯤 지나서야 태양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못 볼까 실망하던 사람들이 예제서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나도 핸드폰 카메라로 의미를 담아 보았다. 한 시간쯤 기다린 결실이었다.

모두가 소원을 이루며 행복을 짓는 한 해 보내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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