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묻은 양심
때 묻은 양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여생 수필가

열흘 남짓이면 설이다. 늘 그렇듯 이맘때면 설 선물 준비로 분주하다. 무슨 선물이 좋을까 고민하다가도 결국은 차례상에 빠지지 않는 과일로 준비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생산자는 명절 대목에 맞춰 출하하려는 욕심이 생긴다.

지난 추석이다. 네 개가 들어 있는 멜론 한 상자를 선물 받았다. 차례상에 올리려고 보니 백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로 까맣게 썩어 있는 게 아닌가. 다른 멜론도 확인해 보지만, 오히려 한 개에 두 군데나 더 그렇게 썩어 있다. 한 개도 아닌 선물용 상자에 들어 있는 네 개가 다 썩었다는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선별과정에서 알면서도 부러 포장한 것은 아닌지, 미심쩍은 생각을 갖게 한다.

물론 포장 당시에는 그 부분이 작은 점이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산자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자식같이 키운 농산물 아닌가. 자식이 병이 났는데 그것을 몰랐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만약 모르고 포장했다면 농사지을 자격이 없는 게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제는 더 생산자를 매도하게 된다. 대면 판매가 아닌 명절 선물은 택배 주문이 많다는 것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선물이기 때문에 받는 이는 불만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를 믿고 싶지는 않지만, 여하튼 씁쓸한 선물이었다.

생산자에게 이유나 물어보고 싶었지만, 생산자 표시도 없다. 그렇다고 선물 주신 분에게 과일이 상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요는 많지, 공급 물량은 적지, 그래도 의도적이었다고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이 정도면 괜찮겠지.’ 했던 생산자의 양심 불감증이 황당한 선물을 받게 한 것은 아닐까 싶다.

만감류 중에 황금향은 추석쯤에도 출하된다. 이는 차례상에는 햇과일로 올리고 싶은 마음이다 보니 농가에서 인위적인 재배로 출하 시기를 조절해서이다. 맛에서 보면 적기에 출하한 상품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맛은 극히 주관적이겠지만, 언젠가 추석 선물로 받아먹어 본 후 지금까지 황금향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때 당도도 없고 시큼함이 내 기호에는 맞지 않아서다. 그런데 최근 친구가 올해 재배한 황금향이라며 나들이에 갖고 왔다. 선입견에 이러저러하다 한 개를 먹었는데, “황금향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언젠가 먹어봤던 그 맛이 아니다.

이번 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대목을 노려 적기가 아닌 만감류를 가온재배로 출하 시기를 앞당기는 생산자도 있을 것으로 본다. 당도가 오르기 전에 출하하다 보니 소비자의 불만과 만감류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몇몇 양심을 판 농가들 때문에 정작 올곧은 농부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버리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가족이 먹을 거라는 생각으로 생산에서 출하까지 양심 생산, 양심 선별, 양심 출하가 이루어져야겠다. 그게 곧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고 선진 농업으로 가는 기반이 될 터이니.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조기 출하해 이익을 얻으려는 욕심이 소비 침체로 이어지고, 결국은 모든 농가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양심 찾기, 욕심을 버리는 것에서부터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