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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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명예교수/ 논설위원

2023년 올해 제주인들의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오사카에 ‘오사카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이 들어선다. 일본에는 2곳의 잘 알려진 대규모 코리아타운이 있다. 도쿄의 신오쿠보(新大久保)와 오사카의 과거 이카이노(猪飼野)라고 불리던 지역이다. 전자가 주로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건너온 소위 한국인 뉴카머들에 의해 형성된 코리아타운이라면 후자는 주로 재일제주인이 이룩한 코리아타운이며, 식민지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지닌다. 행정구역상의 이카이노는 1973년에 사라져, 지금은 오사카시의 이쿠노(生野)구에서 히가시나리(東成)구에 걸치는 쓰루하시(鶴橋), 모모다니(桃谷) 등 몇 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해방 전 조선인의 일본 이주가 본격화한 1920년대를 거쳐, 1930년대에는 일본 땅에 정착하게 된 조선인들의 먹거리를 챙기기 위한 조선시장이 각지에 생겼다. 이카이노의 조선시장은 그런 시장 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그 당시 오사카-제주 간에 ‘기미가요마루(君が代丸)’ 등 객선 직항로가 개설되면서 1930년대 중반에는 제주도 인구의 거의 4분의 1 (5만여 명)이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에서 살았다. 오사카는 일본-한국 간의 경계를 넘는 제주도민의 생활권 일부가 되어 있었다.

1933년에 발행된 사진 주간지 『아사히 그래프』에는 “백의와 돼지머리가 그리는 오사카 신 명소 ‘조선시장’-오사카 이카이노”라는 제목으로 조선시장을 소개하고 있다. 거기에는 활기찬 조선시장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과 함께, “여기는 일본어보다 조선어가 훨씬 많이 들린다. 돼지와 마늘과 장물의 냄새에다가 막대와 공으로 만들어진 조선 문자의 칵테일, 그 안을 백의의 무리가 헤엄친다”라며, “매일 1만 명 가까운 사람이 장 보러 올 만큼 번영한 모습… 곧 이곳을 중심으로 훌륭히 완비된 조선시장이 출현할 것”이라는 해설도 덧붙여 있다.

그때부터 90년의 세월이 지나, 조선시장은 사실 “훌륭히 완비된” 코리아타운으로 변모하면서, 한류 붐의 기세도 타고 매해 200만 사람이 찾아오는 일대 관광지가 되었다. 그동안 이카이노는 파란만장한 제주 사람들의 발걸음을 지켜보고 왔다. 공교롭게도 이카이노는 ‘猪甘の津(이칸의 쓰·津는 이곳이 항구였던 것을 나타낸다)’라는 고대 지명에 유래해, 백제 등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이 이 땅에서 살았다.

8·15 해방과 더불어 많은 제주인이 조국으로 귀환하게 되지만 한 번 귀환한 제주인들의 다수가 4·3을 전후하는 혼란기에 다시 일본으로 되돌아왔다. 이카이노는 4·3 당시 죽음의 땅을 떠난 제주인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제주인들의 일본행은 권위주의체제하의 연좌제나 극심한 생활고로 한국전쟁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일본 사회에서의 차별과 빈곤도 여전히 심각했던 가운데, 남북 분단은 이카이노를 첨예한 갈등의 땅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한 차별과 빈곤, 분단과 냉전의 시대를 넘어서, 이제 오사카코리아타운은 국적이나 문화적 배경을 달리하는 주민들이 상생하는 다문화 공생의 모델로서 주목받고 있다. 오사카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은 역사를 배우고, 서로 공생하고, 미래를 위한 길잡이가 될 것을 목표로, 한일의 상공인, NGO 활동가, 학자 등 현지 유지들이 협력하면서 자료 수집이나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오픈은 올 4월, 제주에 사는 제주 사람들도 꼭 찾아주실 것을 바라 마지않는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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