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출신 양의숙, 50년간 수집 고미술품 '아름다운 추억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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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출판회 및 전시회
1995년 3월 방영된 ‘TV쇼 진품명품’에서 감정위원으로 26년간 활약
"뭐든지 내가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게 가장 소중하고 비싼 것”
양의숙 예나르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전시회장에서 제주산 나무 의자를 배경으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양의숙 예나르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전시회장에서 제주산 나무 의자를 배경으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고가의 이태리 가구보다 우리의 ‘고미술품’이 더 소중한 이유는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인연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 출신 양의숙 예나르 대표(77)는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출판 기념회 겸 전시회를 열었다.

50년 전 서울 아현동에 이어 인사동에서 ‘예술을 나르다’라는 뜻을 지닌 화랑 ‘예나르’를 열면서 수집한 작품 40점도 전시됐다.

이날 행사에서 양 대표가 수집한 컬렉션에는 다양한 사연이 있었다. 19세기 조선시대 소나무로 만든 ‘너 말들이 뒤주’의 사연은 이랬다.

“과거 서울에서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쌀과 참기름을 팔러 다니던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어느날 아파트로 쌀을 팔러 온 아주머니에게 쌀 너 말을 샀다. 뒤주에 쌀을 담아보니 아뿔싸, 쌀의 양이 꽤 모자랐다. 너 말들이 뒤주는 계량이 정확해 오차가 있을 수 없었다. 허겁지겁 뒤쫓아 나가 설명을 한 후에야 쌀을 더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조선시대 장인들이 만든 뒤주 덕분이었다.”

양 대표는 “전시 작품 중 ‘제주산 나무 의자’가 있다. 화산섬 제주의 토양은 물이 잘 빠진다. 그런데 나무는 물을 머금어야 사는데,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주 나무는 대패질도 되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며 100년이 넘은 나무 의자가 지금도 든든한 이유를 설명했다.

양 대표가 아끼는 고미술품에는 ‘반닫이’가 있다. 45년 전 양 대표의 어머니가 제주에 상경하면서 딸에게 준 선물이었다.

“어머니는 관절도 좋지 않은데 무거운 반닫이를 힘들게 끌고 서울로 오셨다. 옛것을 보면 무조건 좋아하는 딸을 위해서 들고 온 것이었다. 첫 아이를 낳자마자 배냇저고리와 기저귀를 담아두는 작은 공간이 됐다. 첫아이를 키우며 사용했던 추억과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반닫이는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양 대표는 출판 기념회에서 “옛날에는 비싸고 귀한 게 소중하다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뭐든지 내가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게 가장 소중하고 비싼 것”이라고 말했다.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제주시 삼도2동 무근성에서 출생한 양 대표는 제주북초, 신성여중, 제주여고, 홍익대 대학원 목공예과를 졸업했다. 1995년 3월 첫 방영된 ‘TV쇼 진품명품’에 26년이나 출연했다.

국내 최고의 민속품 감정가이자 고미술품의 전문가로 현재 ㈔고미술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양 대표는 고미술품에 대해 국민들의 안목을 높여준 장본인으로 꼽힌다.

제주 전통의 알반닫이는 작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움이 배어있다. 알반닫이의 '알'은 작다는 뜻이다. 이 반닫이는 양의숙 대표의 어머니가 45년 전 제주에서 상경하면서 딸에게 준 선물이다.
제주 전통의 알반닫이는 작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움이 배어있다. 알반닫이의 '알'은 작다는 뜻이다. 이 반닫이는 양의숙 대표의 어머니가 45년 전 제주에서 상경하면서 딸에게 준 선물이다.
19세기 조선시대 소나무로 제작된 '너 말들이 뒤주'. 양의숙 예나르 대표가 과거에 쌀 너 말을 구입해 뒤주에 채웠지만 양이 모자랐다. 조선시대 장인들이 제작한 뒤주의 계량은 정확하다고 설명해 쌀을 더 받아낸 사연이 소개됐다."두 살 터울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쌀 너 말이 들어가는 뒤주가 있었다. 뒤주 중에는 좀 작은 편이다. 어느 날 아파트로 쌀을 팔러 온 아주머니에게 쌀 너 말을 샀다. 뒤주에 쌀을 담아보니 아뿔싸, 쌀의 양이 꽤 모자라는 게 아닌가. 쌀 뒤주는 계량이 정확해서 오차가 있을 수 없다. 허겁지겁 뒤쫓아 나가 모자라는 양을 다시 확인하고 쌀을 더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뒤주 덕분이었다."
19세기 조선시대 소나무로 제작된 '너 말들이 뒤주'. 양의숙 예나르 대표가 과거에 쌀 너 말을 구입해 뒤주에 채웠지만 양이 모자랐다. 조선시대 장인들이 제작한 뒤주의 계량은 정확하다고 설명해 쌀을 더 받아낸 사연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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