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가 재미없다는 권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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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 논설위원

조선 후기 성대중은 “내면의 수양이 부족한 자는 말이 번잡하고 마음에 주관이 없는 자는 말이 거칠다.”(「청성잡기」)라 했다. 임금 군(君)자는 다스릴 윤(尹)과 입 구(口)가 결합해, 통치자의 언어가 어떻게 구사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내면의 수양과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고 말을 부릴 줄 알아야 백성이 따를 터.

얼마 전 윤 대통령이 설파한 교육론이 구설에 올랐다. 경쟁해야 다양성이 생긴다고 했고, 자녀가 없어 들여다보지는 못했는데 국어와 역사 교육을 문제 삼는 신술을 펼쳐보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육 내용을 알지도 못하면서 20년 전 얘기를 현실로 인식하고 있다고 대통령의 진술을 교육전문가들은 비판한다. 인터넷상에는 대통령의 연설 장면을 담은 사진이 허섭스레기처럼 나뒹군다. 그리고 ‘새 교육과정’에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에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역사학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기어코 확정했다. 2018년 교육과정의 고교 한국사 학습요소로 들어 있던 제주 4·3사건이나 5·18 민주화 운동 등은 제대로 반영할지 걱정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왜 권력은 이처럼 교육과 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만드는 데 집착할까? 교육과 교과서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일제 조선총독부는 교과서 편찬에 직접 개입하면서 교과서를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을 홍보하고, 전시체제를 공고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는데, 보수집단의 교과서 장악 시도 역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교육에 반영하려는 것이다. 교육계 자체가 담당해야 할 영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일제는 오늘날 국어 교과서라 할 『조선어독본』이라는 것을 계속 수정하면서 정책을 홍보하고 주입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 중일전쟁(1937) 발발 후에는 전시체제에 대응하는 조선인의 자세, 일본군의 위용과 전투력 과시, 전시체제를 강조함으로써 헌금과 군수물자 걷기, 궁성요배 등을 통한 황국신민화 정책이 교과서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편 일제는 일본어를 식민지 조선에 이식하고 적용함으로써 조선인들을 일본 제국의 문화 구조 속에 흡수·통합하려고 했다. 그들은 일본어가 조선인의 필수 지식으로 중류 이상의 사람들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으로 만들려 했다. 초대조선총독부 총독 데라우치부터 일본어 교육을 덕성의 함양과 일본인화의 주요 자질로 보고 일본어 보급을 통해 조선인을 일본 천황에게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총독부는 전쟁터에 나가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 일어 보급 운동을 추진하고, 1942년 국민총력조선연맹은 일어 보급 운동을 ‘국민운동’으로 전개했으며, 1943년에는 교육과정에서 조선어 교과서를 완전히 폐지하기에 이른다. 군대 생활과 전쟁 수행을 위해 일본어 능력을 강화하려 했다. 그 무렵 이광수는 일본어와 조선어의 뿌리가 같고, 조선어는 ‘국어(일본어)’의 일부여서 없어질 운명의 지방어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리고 경성제대 출신 현영섭은 조선어가 교육의 효율성이나 실용성 측면에서 뒤떨어지고 완전한 일본인화를 위해서 조선어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일제와 친일파들의 못된 행태를 뚫고서 우리 말글은 살아났다. 한국어는 발전했고, 한류 열풍을 타고 세계인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가 되었다. 이런 마당에 한국어를 비웃고, 사회적 합의가 없는 역사 교과서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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