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척(慘慽)의 고통과 새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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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내 딸이여 내 딸이여, 마음과 몸 맑았도다./ 심기조차 아름다웠어, 단아하고 성실했지./ 갓 자란 난초, 티 없는 구슬/ 빈산에 널 묻다니, 봄이 와도 모르겠네./ 죄 없는 너 보내놓고 난 이지경이 되었구나./ 백 년이 가도 원통치 내 억장이 무너지네./ 어허라! 세 번 노래하니 노래도 구슬프네./ 하늘 보고 목 놓아 우노마는/ 하늘은 묵묵부답이네.’

퇴계 이황과 함께 16세기 조선 성리학계를 이끈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

그는 문과에 합격해 중종의 조정에 나아가자마자 기묘사화로 억울하게 죽은 조광조의 복권을 발의하는 등 지조가 높았다.

김인후는 젊은 시절 동궁(훗날 인종)의 사부로 임명됐다. 동궁은 후에 임금 자리에 올랐으나 얼마 되지 않아 승하했다.

김인후도 벼슬에서 물러났고 인종을 추모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인종의 기일이 되면 고향의 숲속에 들어가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인종의 뒤를 이은 명종은 수차례 김인후를 조정으로 불렀으나 모두 거절했다. 인종의 충신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강직한 그도 13세 막내딸의 죽음 앞에서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김인후는 막내딸을 잃기 전에 막내아들도 잃은 적이 있다.

이 때도 김인후는 ‘석 자 키에 두어 치 관 두께라니. 북망산 바라보니 눈이 늘 젖도다.… 내 아들아 그림자라도 부질없는 꿈길에 나타나주렴.’이라고 목 놓아 불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을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 천붕(天崩)이라 하고 자식을 먼저 잃는 것을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참척의 고통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제주의 6살 송세윤 군이 4명에게 새 생명을 선사하고 하늘의 별이 됐다.

지난달 1일 뇌사상태에 빠진 송군은 같은 달 28일 제주대학교 병원에서 심장과 폐, 신장을 기증해 4명의 생명을 살리고 짧지만 아름다운 생을 마감한 것.

송군의 가족은 송군이 어디에서든 살아 숨 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기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송군의 어머니는 “이제 엄마 걱정하지 말고 하늘나라에서는 다른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아. 매일 사탕, 초콜릿 먹지 말라고 잔소리 한 것 같아 미안해”라며 울음을 삼켰다. 송군의 어머니는 참척의 고통에도 4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장기 기증을 결심한 것이다. 숭고한 마음이다.

이제 밤하늘에 새로 생긴 별 하나가 티 없이 맑게 반짝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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