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절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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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재릉초등학교 교장·수필가

동생으로부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가 입원해야 하니, 방학한 누나가 동행해 달라고 한다. 직장 다닌다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었는데, 타이밍이 잘 맞았다. 모처럼 첫 휴일을 어머니 병간호로 효도를 마음먹었다. 부모의 긴 병치레에 효자 없다지만, 다행히 형제들이 많아 돌아가면서 수발을 들고 있다.

요양원은 정확히 9시 30분이 되어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휠체어에 탄 채 무의식으로 다가온다. 바람의 향기로 딸을 알아보는 걸까? 잠기운 두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다. 모녀 상봉의 인사도 나눌 새 없이 구급대원의 신속한 움직임에 어머니는 들것에 실려 119구급차로 옮겨졌다.

부지런히 구급차를 뒤따라가며 어머니를 추억한다. 잊힌 것, 기억해야 할 것들을 꾹꾹 눌러 담으니 천천히 울음이 나온다. 목구멍이 따갑다. 헛헛한 마음에 음악의 볼륨을 올려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차창 밖으로 낮게 드리운 겨울 안개도 슬픔에 젖는다.

시곗바늘은 어머니의 삶을 쫓아 되돌아간다. 외할아버지 따라 일본에서 교포 2세로 남부럽지 않게 사셨던 어머니는 해방을 맞아 고향인 호근리로 귀향했다. 일본에서 고등학교 역사학 1년 차를 수료한 터라 당시 최고의 신여성이셨다. 스스로 한글을 3일 만에 익히고 문맹의 아녀자들을 위해 당차게 야학을 하시기도 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던 4·3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를 만나 제2의 삶을 사시게 된다.

자라면서 그런 말을 종종 들었다. 어머니 닮아 영특하고 재주가 뛰어나다고. 꽃다운 18세에 대한해협을 건너와 그리움에 패랭이꽃을 심고 황금색 금잔화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어머니. 잘 닦여진 반질반질한 마루 한쪽에 느린 햇살이 걸렸다. 드르륵드르륵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옷감의 먼지가 올올이 날리고 빨간색 파란색 재봉실에 어스름 노을빛을 짖는 그 어느 메쯤 어머니의 반듯한 뒷모습이 보인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여러 가지 검사가 시작되었다. 경직된 채로 굳어진 몸은 일곱 살 아이보다 더 작은 몸짓으로 누워있다. 34.7㎏. 엄마 삶의 무게. 온몸은 하얀 각질로 덮여있다. 피를 뽑으려던 양손 등은 퍼렇게 멍이 들고, 급기야 발목으로 채혈을 한다. 탁탁. 여러 번 시도 끝에 힘줄보다 더 큰 바늘이 들어간다. 반사적인 고통스러운 몸부림은 무섭고 더 죄송스럽다. 차라리 내 피를 뽑아가 다오. 이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대신할 수도 있는데, 내가 다 아프다. 병실 공기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고약하게 다가온다.

이런저런 검사 수발에 기진맥진 되었다. 부드럽게 침상이 이동되도록 돕는 나와 병원 직원은 다르다. 호스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정리하는 나와는 달리 업무적인 직원은 빨리하는 게 중요하다. 아슬아슬 어머니의 움직임은 장애물을 피해서 간다. 엄마의 얼굴이 기침과 가래로 일렁일 때마다 내 가슴도 일렁인다. 기뻐하는 미소와 슬퍼하는 눈물이 중첩된다. 크렁크렁 가래 소리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힘듦보다 무서움 때문이었을까. 간병인이 도착하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나왔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한나절이 지나서야 동생과 나는 커피와 도넛으로 꾸역꾸역 늦은 점심의 허기를 채웠다. 꺼져가는 어머니의 목숨에 붉은 눈시울을 애써 감추려고 서로 말없이 꺽꺽 삼켰다. 어머니와 보낸 마지막 한나절이 아니기를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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