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인 신뢰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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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지금으로부터 52년 전, 1971년 1월 20일 우리나라 어느 신문에 실린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극심한 어려움 속에 살아야 했다. 전쟁이 끝나기 여러 해 전부터 경제가 파탄 상태여서 정상적인 거래로는 식량을 구입하기가 어려웠다. 그날그날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젊은 여성들이 밤거리로 내몰리기도 했다. 그런 시기에 일본 사회를 일깨우는 충격적인 사건이 여러 신문에 보도되었다.

현직 판사가 공판 진행 중에 갑자기 쓰러져 죽고 말았다. 결코 자연스러운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철저한 조사가 요청되었다. 그렇지만 특별한 내용을 찾아내진 못했고, 그래도 뭔가를 찾아내려 하던 중에 이런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쓰러진 판사에게서 심한 영양실조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가 지니고 다녔던 점심 도시락을 열어보았는데, 다른 것은 없었고 산나물만 한 웅큼 들어있었다. 평소에 그가 제대로 먹지 못했을 거라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판사의 사인은 영양실조라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그 이야기와 관련해서 우리의 신문은 ‘굶어 죽은 판사’라는 제목을 붙였다. 건강을 유지하려 했다면 암시장을 통해 식량을 구입할 수도 있었을 텐데, 판사의 준법정신이 굶어죽는 길을 선택하게 만든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판사라는 직책의 어려움을 알리려고 했다. 업무는 과중한데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없는 직책이 판사라고 했다. 연수원을 마친 사람들이 판사의 직책을 선호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알리려는 글이었다.

그런데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굶어 죽은 판사가 있는 사회라면 거기에는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현직 판사가 배가 고파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한 인간이 우직하게 쓰러지면서 보여준 모습이 많은 일본인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한사람이 쓰러지는 동안, 패배와 좌절 속을 헤매던 많은 일본인들이 잃어버린 용기와 진실을 되찾기 시작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내적인 진실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그때의 일본이나 현재의 우리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정과 교회는 물론 많은 공동체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내면과 중심에서부터 진실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다.

교회를 비롯한 공동체들은 내적인 신뢰로부터 자신의 구체적인 모습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세워진 공동체가 크게 성장해가는 동안, 내적 가치에 대한 초기의 관심은 소홀해지면서 외적인 가치관과 제도적 운영 노하우로 대치되어 간다. 어느덧 내적 신뢰의 자리를 장악하게 된 내적 불신과 균열은 공동체 파탄의 결정적 요인으로 활약하면서 운명적 필연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 우리의 전반적인 상황은 내적신뢰의 초기는 한참 지나온 듯하다. 외적 성장의 시기도 한참 지나와서 지금은, 어떻게 하면 다시 일어설 것인지의 문제를 고심할 시기이다. 가까이 있는, 무심코 지나온 거기서부터 내적인 신뢰와 진실을 회복하려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시기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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