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이 따뜻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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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겨울 들어서 가장 추운 날이다. 은행 일을 보려고 일찍 집을 나섰다. 북쪽 하늘은 금방 울음이라도 터질 듯 잔뜩 찌푸린 채, 듬성듬성 눈발이 날린다. 골목 응달진 곳에 눈이 수북하게 쌓여 여간 미끄럽지 않다.

꽁꽁 싸맨 얼굴을 비집고 날 선 바람이 후려치듯 파고든다. 볼이 시리다 못해 아리다. 장갑 낀 손을 패딩점퍼 주머니에 넣고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멀리 지팡이를 짚고 마주 오는 남자의 걸음이 매우 불편해 보인다. 그나마 바람을 등져 다행이다 싶은데, 그 바람마저 힘겹게 느껴진다. 걸음 속도도 마냥 느려 내가 거리를 좁히는 모양새다.

몇 미터쯤 간격이 좁혀졌을 무렵이다. 한겨울에 형편없이 초라한 노인의 입성에 걸음이 주춤거렸다. 트레이닝 바지는 헐렁하고 얇아 보였다. 윗도리 점퍼마저 남루하고 모자도 후줄근했다. 거기다 지팡이를 짚은 오른손에만 장갑을 꼈다. 왼손은 추위로 손등이 푸르딩딩 언 것 같다. 체온마저 얼었을 것 같은 모습에 상대적으로 따뜻하게 차려입은 내 차림을 내려다봤다.

순간 주머니 속의 내 손이 움츠러들었다. 며칠 전 속에 기모가 든 장갑을 사 처음으로 끼고 나온 참이다. 이 장갑을 드릴까. 여자 것이면 어때. 손만 따뜻하면 됐지. 그러나 맞을 리도 없는 손가락이 꽉 끼는 장갑이다. 혼자 마음으로 실랑이를 하는 사이 무표정한 얼굴로 스쳐 지났다. 행여 장갑 하나에 상대의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나이 들수록 겉치레도 신경 써야 한다. 어쩌자고 저리 허술하게 입고 아침에 찬바람을 맞으며 밖으로 나왔는지. 몸이 불편한 것보다 차림이 초라한 것에 더 마음이 쓰인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만약 저 어르신이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면, 망설임 없이 장갑을 벗어 건넬 수 있었을까. 순간적 연민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했던 마음에 갈등이 일었다. 여자용이지만 그냥 끼라고, 두 손 잡아 건넬 수 있는 따뜻함이 부족한 건 아니었는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평소 난 옹그린 마음의 소유자는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밖에 나가면 어르신이란 호칭을 종종 듣는다. 처음에는 듣기 참 거북했다. 어르신으로 대접을 받을 만한 인품을 갖추지 못했을뿐더러, 스스로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불편한 부름에 무신경해지고부터다. 거리에서 생판 모르는 이들과 스쳐 지날 때마다, 상대의 나이를 가늠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나이가 어떻게 되나. 나보다 위 아니면 아래가 될까.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내 겉모습을 상대방에 비춰 확인하고 싶은 심정일지 모른다.

어느새 뒤뚱거리며 모퉁이를 돌아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나와 비슷한 연배가 될 것 같은 추측이 들자 가슴이 답답했다. 온전하게 걸을 수 있는 현실이 감사한 것만은 아니다. 오지도 않은 앞날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한겨울이면 제주의 음울한 날씨 탓인지 많은 생각이 오가는 요즈음이다.

겉모습으로 상대의 형편을 가늠한다는 것은 편견이 될 수 있다. 저분도 집으로 돌아가면, 따듯하게 맞아주는 가족이 있을 것이다. 혼자 괜한 걱정을 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해졌다. 노년은 겨울이 힘들다. 무엇보다 건강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다. 부디 춥고 외로운 삶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부지런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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