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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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자 / 수필가

연탄 배달 봉사를 하는 화면에 눈이 멈춘다. 차가 갈 수 없는 높은 언덕 좁은 골목에 혼자 사는 어르신 집이다. 봉사자들 얼굴에 비지땀이 흐르고 있으나 표정은 밝다. 인간 띠를 만들어 손에 손을 건너서 삼백 장 넘게 채운다. 따스한 온기가 전해온다. 사람의 정이 그리운 사람들이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차가운 겨울을 이겨내는 힘이 되고 있지싶다. 

한밤중이다. 어머니가 잠결에 손을 휘저으면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 연탄불이 꺼졌나 보라.”

“ 아침밥은 있느냐?”

지난한 시절에 깊이 담아두었던 걱정거리 들이다. 선망 증세가 있는 어머니에게 종종 있는 일이었다. 무의식 상태에서 뱉은 말이겠다 싶어도 짠한 마음이 들어 옛일들을 더듬게 된다. 

연탄을 들여놓는 것이 겨울 준비 시작이다. 몇십 장 정도로 하늬바람을 막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숫자다.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일이백 장씩 부엌과 창고에 쌓아 두었다. 석탄이 나지 않는 제주는 물량이 달리면 돈이 있어도 사기가 힘들었다. 한 집에 다섯 내지 열 장씩 한정으로 팔기도 했다. 많이 들일 때는 수레나 차로 배달도 해 주지만, 수량이 적으면 직접 가서 가지고 와야만 했다. 

연탄 공장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어머니 혼자 다니려면 여러 번 갔다 와야 할 것 같아 내가 지원군으로 나섰다. 어머니는 다섯 개 정도, 나는 두 개를 머리에 이고 왔다. 수건으로 똬리를 만들고 대야를 얹어서 오는데, 머리가 깨어질 정도 아파 여러 번 쉬어야만 했다. 어머니가 내려주고 다시 올려주기를 반복해야 했다. 빠른 걸음을 걸을 수도 없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천천히 걸어야 한다.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오빠가 앞치마를 둘렀다. 배고픈 동생들에게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주려고 준비 중이다. 찬밥에 송송 썬 신 김치를 섞고 찬장 깊숙이 숨겨두었던 버터를 찾아냈다. 형제들은 버터의 고소한 향미를 맡으며 연탄 화로에 둘러앉아 손을 쬐며 기다렸다. 다 된 볶음밥을 주걱으로 금을 그었다. 네 등분하여 각자 몫을 먹도록 했다. 여동생인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던 가슴 따뜻한 오라버니였다. 형제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활하면서 한자리에 모이기도 힘든지도 오래되었다. 반백 년이 시간이 흘렀지만, 팬에 눌어붙은 김치볶음밥을 추억하면 군침이 돌곤 한다. 

젖은 연탄은 잘 타지도 않고 집게로 집다가 부서지기가 일쑤였다. 어찌 그리 불은 잘 꺼지는지…. 연탄불이 살아나려면 숯이 필수로 준비해 두어야 한다. 잘 마르지 않은 연탄에서 나온 가스 중독으로 목숨을 다하는 일도 종종 일어나곤 했다. 마당으로 기어 나왔다. 딸린 건물에 세 들어 살던 아줌마가 나를 발견한 것은 다행이었다. 고등학생인 남동생과 자취를 하던 때의 일이다. 내 방에 가스가 스며들었다. 마침 동생은 건넛방에서 잠을 잤기 망정이지 큰 변을 당할 뻔했다. 우리가 살기 위해 마련한 집은 신식 건물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큰마음 먹고 자식들이 주인 눈칫밥 먹지 않게 마련한 집이었다. 놀란 가슴을 안고 어머니는 고향에서 한걸음에 달려와 부엌 수리를 맡겼다. 남은 겨울을 나기에 충분한 연탄도 들여 주었다. 

겨울에 온기가 되고 뜨끈한 끼니까지 채워주었던 귀중한 불씨, 연탄이 겨울날의 초상으로 다가온다. 

좋아하는 계절이 겨울이라고 대답하기도 그렇다. 황량해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씁쓸하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발버둥 치고 에너지 위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환경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사랑의 기부 온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는 뉴스도 들린다. 겨울은 점점 얼어붙고 녹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공동선을 위한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착한 사마리아인’들에게 겨울을 부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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