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루 고인돌 형상의 들렁모루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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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돈, 前 애월문학회장·시인

추위가 누그러진 오후 서귀포시 서홍동에 위치한 들렁모루 바위를 찾아간다. 제주시에서 5·16 도로를 따라 들렁모루를 가는 길 양쪽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고, 저 멀리 햇빛에 반사되는 바다는 포근하게 다가온다.

5·16 도로를 내려와 선덕사를 조금 지나 오른쪽으로 곧게 뻗은 길을 한참가다 왼쪽으로 꼬불꼬불한 시멘트 길을 조금 가니 여기가 들렁모루 입구이다. 들렁모루 산책로는 별다른 주차장이 없고 감귤과수원 돌담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렁모루라는 이름이 생소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자주 다녀가는 곳이다.

들렁모루 입구에는 은행나무가 팔 벌려 낯선 이를 반긴다. 여기서 5분 정도 걸어가면 고개를 내민 듯한 바위가 보인다. 바로 ‘들렁모루’란 이름의 비밀을 간직한 바위다. ‘들렁모루’라는 이름은 비어있는 바위를 의미하는 제주어 ‘들렁’과 동산을 의미하는 ‘모루’의 합성어로 ‘속이 비어 있는 바위 동산’이라는 뜻이다. 필자가 보기엔 살짝 들려있는 머리처럼 보였다.

언뜻 고인돌 같아 보이지만 자연적으로 생성된 바위이다. 가운데 받침돌이나 지지대가 없어서 금방 중심을 잃어 밑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지만 오랜 세월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켜왔던 바위다. 가로 길이는 눈짐작으로 5m쯤 되는 것 같다. 길게 뻗은 것이 꼭 양팔저울로 물건의 무게를 재는 듯하다.

이곳의 볼거리는 비단 이 바위만이 아니다. 들렁모루 바위가 있는 곳은 그다지 높지 않은 동네 언덕 같은 곳이다. 그러나 올라 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바위위에 올라가면 그 비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바위 위에 올라서면 동쪽 지귀도에서 서쪽 송악산까지 아름다운 서귀포 해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들렁모루 바위 아래로는 사람 얼굴 형태를 한 바위가 눈에 띈다. 눈을 지긋하게 감은 것이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듯한 바위이다. 아니면 홀로 남겨진 누군가를 생각하며 회상에 젖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바위도 들렁모루 바위와 같이 이곳을 산책하는 이를 반기며 오랜 시간 함께 했으리라.

여기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산책길을 따라 내려간다. 봄이면 솔잎 향기가 코를 찌르는데 겨울이라서 그 느낌을 받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들렁모루 산책길은 둥근 원을 따라 걷듯 조성되어 있고, 키 작은 소나무와 다양한 나무들을 볼 수 있어 자연학습장이 되기에도 충분한 요건을 갖췄다.

산책로 중간쯤에는 돌무더기 사이로 자라난 특이한 나무가 있어 시선을 멈춘다. 바위와 어우러진 이 나무를 보노라니 어떤 역경 속에서도 이를 헤쳐 나가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들렁모루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대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산책로 끝에서 만나는 대나무 숲의 운치는 나무랄 데가 없다. 대나무 숲이라기 보단 대나무 길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그러나 제주에서 이런 대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자 행운이다.

대나무 숲을 걷다 누군가 써 놓은 글귀에 걸음을 멈춘다. ‘핑계를 댈 시간도 없다. 시도할 것들이 아직 많기 때문에….’ 잠시 명상에 잠겨본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대나무를 흔든다.

힘든 일이 있거들랑 들렁모루에 올라가 피로감도 풀고 편안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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