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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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문 / 시인, 수필가

높은 산 위에서 혹은 바닷가에서 해 뜨는 것을 보면서 하는 다짐. 그리고 그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 그래서 사람들은 뜨는 해를 보러 산으로 바다로 나서는 가 싶다. 새로 다짐하고 새로 마음을 다 잡고 열심히 살아가기 위하여.

양양에 살 때는 낙산바닷가에서 신년 해맞이를 했다. 바닷가에서 준비한 시를 낭독하면서 함께 간 사람들과 새해 다짐을 했다. 새해 소원을 풍선에 매달아 하늘로 띄웠다. 서귀포에 살 때도 외돌개 바닷가, 보목 항구, 섭지코지에서 신년 해맞이를 했다. 새해 첫날 떠오르는 붉은 해를 기다리고 바라보는 것은 추위 속에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긴 코로나로 인해 몇 년 간 해맞이 행사가 중단되었다. 그런 가운데 올 해는 여러 지방자치 단체에서도 해맞이 행사를 재개하였다. 중단이 되었다가 새로 개최하기에 더 설레었고, 참석하는 사람들을 위한 부대행사도 다양하게 준비된 것 같았다.

새해 첫날, 해 뜨는 것을 놓친 사람이라면 다른 날을 선택해도 좋을 것이다. 어느 날이라도 일출을 보면서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지 않을까. 오늘이 바로 새해 첫날처럼. 그런 마음으로 뜨는 해를 바라보면서 다짐과 결심을 해 본다면 어느 날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마음속에 늘 신선한 오늘을 시작점으로 하여 내일부터는 더 보람 있고 알차게 보낼 결심을 하게 될 것이다.

내륙에 사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해맞이 장소는 역시 바다다. 그러나 이곳에서 바다로 가는 길은 여러 개의 다리를 건너고, 많은 터널을 통과해야 하고. 한참을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작년 설 날은 차례를 지내고, 바다를 보려고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처음에는 잘 달려갔지만 가고자 하는 곳의 절반도 가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차량이 너무 막혀 언제 갈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너도 나도 바다가 보고 싶었는지 동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주차장과 다름이 없었다.

새해 첫날을 피하여 다음다음 날. 해맞이를 하러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어둠을 뚫고 한 시간 반을 달려서 도착한 바닷가. 소나무가 줄 지어 있는 바닷가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동편이 천천히 붉은 기운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간혹 갈매기가 날아올라 붉어가는 하늘을 더 아름답게 해 주었다. 조금씩 솟아오르는 해. 그 붉음을 바라보면서 새 다짐을 하였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 위에 붉은 기운이 내리면서 해는 불끈 솟았다. 기도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 그 사이에 해는 둥실 떠 올랐다.

바닷가의 몽돌이 빛나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파도가 차츰 붉은 빛을 품어 안으면서 심장을 추스르고 있었다. 펄떡이는 파도의 어깨가 부드럽게 다가왔다. 멀리 태평양에서 달려온 그 푸른 빛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아침을 맞이하기 위한 경건한 기도가 끝이나고, 하루의 힘찬 설레임이 솟아나는 때. 세상의 길이 그 바다로 향하는 듯 하였다.

갈매기가 몇 마리 더 날아오르자 그 날갯짓에 햇빛이 반사되기 알맞았다. 우수수 파도가 왔다가 가면서 흰 포말을 한 움큼씩 부려놓았다. 정면으로 해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붉은 햇덩어리는 어느새 쳐다볼 수 없는 빛의 발광체가 되어 온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바다를 굽어보는 눈길에 세상이 점점 명확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동해는 서귀포 바다와 다른 느낌이었다. 서귀포의 바다가 다독이는 파도였다면, 동해바다는 들썩이는 파도. 동해바다는 한 방향으로 바다를 보게 하지만 서귀포 바다는 사방에서 손을 내밀었지.

동해바다를 향해 크게 소리쳐 보았다. 소리쳐 놓고 귀 기울여보면 반향이 들려왔다. 저 소리가 파도를 타고 제주까지 밀려가서, 아 서귀포의 바다까지 닿을 수 있을까. 그 섶섬까지 흘러가서 그 햇살 눈부신 작은 항구까지 닿을 수 있을까. 저 흘러가는 바닷물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듯이 우리들도 서로 어깨를 겯고 어우러져 살아간다면 더 좋은 내일이 되지 않을까.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새 다짐을 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니 모레. 가능한 날 새벽. 해가 뜨기 전에 동쪽으로 달려가보라. 어둠 속에서 기다리면서 마음속에 새 다짐을 생각해 두었다가, 불쑥 해가 솟아오르면 기도를 해 보라. 해는 내일도 어김없이 떠오르고, 내 다짐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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