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차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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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설 연휴에 해외여행 규모가 지난해보다 13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제례에서 탈주하려는 흐름이 점차 세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상전벽해라더니, 15년간 말없이 제사를 지내 온 아내에게 이젠 그 부담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며, 제사를 그만하겠다고 나선 사람도 있다고 들리는 시절이다.

하지만 우리 생활에 뿌리 깊이 내린 전통적 풍속인데 하루아침에 그만둘 수 있느냐, 제사 의례가 사라지면 인적 관계망이 한꺼번에 무너지게 된다는 우려를 들어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친족이라는 혈연관계의 급격한 해체를 불러와 사회적 기반에 큰 균열이 올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찬반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그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흔들리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논란의 원인이 제사·차례 음식 차리기에서 비롯한 가족 간의 갈등과 스트레스가 발단이 아닌가 한다. 제사·차례상을 풍성하게 차리는 게 조상을 기리는 일이라는 인식이 잠재해 있는 한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모두 실감하는 일이리라. 옛날에 단출했던 상차림이 경제적 여유와 유통구조의 발달로 더욱 푸짐하고 번지르르해졌다. 무엇보다 가짓수가 늘어나면서 차례 음식 차리기가 중노동(?)이 돼 있지 않은가. 제사 명절이 돌아오면 음식을 준비한다고 온 집 안이 떠들썩해진다.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올리겠다며 열대과일 망고와 파인애플은 물론 피자와 아이스크림까지 올리는 집안도 있다. 긍정적인 반응이 없잖으나, MZ세대의 제사라고 너무 앞서간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세상이 달라졌다.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비늘 없는 고기를 올려선 안된다느니 하던 건 옛날얘기가 된 지 오래다. 전통주나 소주를 고집하다 고인이 즐기던 양주로 대체한 집안도 있다는 얘기엔 할 말을 잃는다. 급기야 제사상에도 서구화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잖은가.

근래에 성균관 유도회총본부에서도, 조상을 추모하고 기리는 게 중요하므로 전통에 갇힐 이유가 없다며, 시대의 추세에 따라야 한다고 짚었다. 번거롭게 전을 붙이지 않아도 된단다. 음식에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으면 된다는 말로 들린다.

실제 예서에서도 음식 가짓수에 대한 언급은 없고, 조선왕조실록에도 그 시기에 구할 수 있는 ‘시물(時物)’을 올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금 확대하면, 사정이 부득이한 경우에는 상차림을 통째로 구매해도 된다는 말이 아닌가. 가족이 한데 모여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몸소 만들어 정성이 깃들게 하는 게 백번 맞지만, 음식 만들기가 가족 간 갈등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이 돼선 안될 것이다.

실은, 제사상과 차례상은 다른 것이다. 차례상은 차를 올렸던 습속에서 유래된 것. 주자가례에는 ‘술 한잔과 차 한잔, 과일 한 쟁반을 올리고 축문도 읽지 않는다.’고 명시해 있다. 생활이 여유로워지고 먹거리가 풍부해 가짓수가 불어나다 보니, 어느새 차례상이 제사상이 돼 버린 것이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일찌감치 절제했더라면 추석과 설 차례상이 턱없이 풍성하지 않았을 것을. 결국 차례상은 없어지고 제사상만 남은 게 돼 버렸으니.

조부님 합제가 섣달그믐날, 올해는 섣달이 큰 달이라 제사 하루건너 거푸 설 차례를 지냈다. 제사를 지내는 큰아들 집이 읍내라 몰려온 한파에 옷 주워입고 오가느라 힘겨웠지만, 당연한 걸음이라 마음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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