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과 인간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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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계묘년(癸卯年) 설날도, 귀경길을 막았던 폭설도 늘 그랬듯이 이제는 기억으로 남았다. 2007년 이후로 성황을 누렸던 간지(干支) 마케팅은 검은 토끼띠 해라 그런지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다. 정해년(丁亥年)인 2007년은 황금 돼지띠 해로 홍보되었지만, 천간(天干) 정(丁)은 오행 중 화(火)이므로, 붉은 색이다. 그런데도 간지 마케팅이 성공해 출산붐이 불었다. 정작 오행 중 토(土)로, 누런 돼지띠였던 2019년(己亥年)에는 황금돼지 마케팅이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니 금(金)의 해인 2031년(辛亥年)에는 인구절벽을 벗어날 간지 마케팅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계(癸)는 10번째 천간으로, 수(水)에 속하여 검은 색이다. 숫자로는 10, 계절로는 겨울, 방위로는 북쪽, 오덕으로는 지혜, 장기로는 신장, 맛으로는 짠맛에 해당한다. 묘(卯)는 4번째 지지(地支)로, 목(木)에 속하여 푸른 색이다. 숫자로는 2, 계절로는 봄, 방위로는 동쪽, 오덕으로는 인간다움(仁), 장기로는 비장이나 간, 맛으로는 신맛에 해당한다. 상극인 금 기운을 약하게 할 정도로 강한 목 기운에 물을 얇게 입힌 모양이라고 해서 금박금(金箔金)으로 판단한다.

길흉화복이란 그것을 누리거나 회피하려고 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구성된 것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필두로 포스트 휴먼(Post-Human)을 내세우는 시대에도 여전히 토정비결과 신년운세가 관심이나 흥미를 끈다. 하지만 2007년과 2019년, 2031년은 다를 게 없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가니, 우리가 설이라고 정한 날이 돌아올 뿐이다. 그런데도 설렌다면 설을 맞는 우리 마음이 달라서다. “나이 든 사람은 한 번씩 늙는 게 표난다던데, 교수님 요즘 좀 표나요.” 이 말을 한 젊은 지인도 꼭 그대로 되돌려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변한 게 맞다.

이런 깨달음이 도덕경 5장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천지(天地)는 인자하지 않아서(不仁)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아무렇지도 않게) 대한다. 성인(聖人)은 인자하지 않아서 백성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대한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다. 비어 있지만 구부러지지는 않고, 움직이지만 오히려 만들어낸다. 말이 많으면 자주 곤궁에 처하게 되니, 적절함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여기서 가장 고민스러운 단어는 인(仁)이다. 천지자연과 성인이 인자하지 않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다움’으로 번역하면 ‘마음을 쓰는 게 없이 공평하고 객관적’이라는 말이 된다.

지난해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던 영화 ‘헤어질 결심’의 ‘오스카 최종 후보 불발’이 설날 직후 가장 뜨거운 뉴스다. 부사 ‘마침내’ 열풍으로 기억되었던 만큼 아쉬움이 크다. “내가 품위 있댔죠? 품위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요? 자부심이예요.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새해 벽두에 보는 도덕경 5장은 이러한 붕괴를 느끼는 인간의 품격, 곧 인간다움을 역설적으로 말한다. 자부심이 붕괴되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인간의 품격을 잃어서다. 인간의 품격을 지키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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