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바른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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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논설위원

길을 걷는데, 어디에 있었는지 개가 짖는다. 나는 개를 볼 수 없는데 개는 내가 지나는 것을 아는가 보다. 사람은 눈으로 보면서 주위를 확인하지만, 개는 코로 냄새를 맡아 주위를 살핀다.

사람과 개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 다르다. 사람과 개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 다르듯, 같은 사람이라도, 너와 내가 모두 동일한 대상을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개는 배설물을 향기로운 것으로 인식하는지 연신 배설물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지만, 사람은 그것을 역겹고 더러운 것으로 인식한다. 그렇다면 배설물의 진실은 무엇인가? 향기로운 것인가 역겨운 것인가? 사실 배설물은 입으로 들어간 음식물이 그 모양을 변화시킨 또 다른 음식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똑같은 대상을 인간은 역겹게 느끼지만, 개는 향기롭게 느낄 뿐, 그것의 본질이 반드시 역겨운 것은 아닐 수 있다.

저들은 옳다고 아우성치는 사실을, 왜 나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불의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저들의 주장처럼 정의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면 어지럽다.

그래서 나는 “다르지만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좋아하고 그렇게 사고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서로 조화를 이루려면 다른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달콤한 설탕물이 맛있는 맛이라고 달콤한 맛만 있다면 오묘한 다른 맛이 있을 수 없다. 쓴맛도 있고 매운맛도 있어야, 서로 약간의 배합비율을 달리하면서, 수없이 많은 오묘한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듯 인간사회도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현직에 있을 때, 대학원 수업을 할 때면, 나는 일주일 전에 범위를 정해주고 수업 이틀 전까지 질문지를 보내라고 했다. 질문지를 보내지 않은 사람에겐 내가 대신 질문하고 대답하지 못하면 “왜 모르면서 질문하지 않느냐?”라며 꾸짖곤 했는데, 학생들에겐 그 시간이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시간에 수많은 논문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사실 논문거리를 얻은 것은 학생들만은 아니었다. 가르치는 나도 그들의 머리를 빌려 많은 아이디어를 얻곤 했었다.

그렇고 그런 과정을 통하여 지금도 내가 갖춘 좋은 버릇이 있다면, 남의 말을 들어 정리한 후 결론지으려 하며, 언제라도 내 생각을 바꿀 자세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돌파력이 부족한 것 같다. 아니다. 모두의 동의를 얻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지만, 한 번 동의를 얻으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늦어 보이지만 사실은 빠르다.

그러나 도둑질은 다름의 문제가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인간들이 합의한 윤리 질서에 따라 결코 옳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요지경 속이다. 도둑질해서 많은 사람에게 지탄받더라도, 제 패거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당당하다. 도둑질하고도 옳다고 억지를 부리는 저런 덜떨어진 패거리 속에서, 그들과 생각이 다른 나는, 그들 앞에 홀로 선 고독자이다.

도둑은 주인을 싫어한다지만, 파렴치한 도둑이 오히려 “도둑 잡는 사람들이 자유를 억압한다.”고, 우매한 민중을 선동한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 감으며 은연중에 저들을 선한 곳으로 인도하려는 사람은 큰 어른이지만, 순박하기만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들의 노예일 뿐이다. 더 잘못되기 전에 저들의 무모한 돌격을 막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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