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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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편집이사 겸 대기자

어릴 적 친구들과 제주시 칠성로를 걷다보면 코리아극장과 제일극장을 만나고, 이어 동문로터리로 나오면 동문시장 2층에 위치한 동양극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칠성로에서 관덕정을 지나 서문로 쪽으로 나오면 현대극장도 자리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극장에 단체관람이라도 가는 날이면 아침부터 어머니를 졸라 관람료를 받아 들고 신나게 학교로 향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진 극장들이지만 어린 시절 기억의 한 편에는 당시 극장들의 모습이 언제나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19년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 속에 철거된 현대극장은 역사적 숨결이 살아 있는 장소였다. 1944년 조일구락부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이 곳에서는 1947년 2월 좌파세력인 민주주의민족전선 제주도위원회가 결성됐고, 그해 11월 우파세력인 서북청년단 제주도본부가 결성됐다.

이념이 상극된 2개 단체는 제주4·3 전개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919㎡ 부지에 지상 2층 건물로 이후 제주극장과 현대극장으로 간판이 바뀌었고, 민간에 매각된 뒤 철거됐다.

현재 이곳에는 안내표지판 조차 세워져 있지 않다.

▲서귀포시가 올해 문화관광체육분야 사업을 발표하면서 서귀포관광극장을 보존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당초 서귀포시는 서귀포관광극장을 철거해 이중섭미술관과 연계한 수장고로 활용할 계획이었지만, 1960대의 근대 건축물이자 서귀포 1호 극장으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축물로 판단해 보존을 전제로 토지를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역사와 문화,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도시의 흔적을 너무나도 쉽게 지워 버렸다.

코리아·제일·동양·현대극장은 이제 옛 이름이 돼 버렸다.

도시는 현재의 모습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고, 소통의 부재가 계속된다면 그 도시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도시는 결국 생명력을 잃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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