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담그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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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열 / 수필가

입춘을 맞은 정월이다. 마당 깊숙이 들어온 햇살이 봄볕처럼 싱그럽다. 뜰 앞에 늘어놓은 메주 내음이 바람을 불러들여 장 담그기 좋은 날이다. 손주가 태어나던 해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아홉 해째다. 장독대에는 그때처럼 올망졸망 모여 재잘거리는 아이들처럼 항아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시부모님 손때가 묻어나던 고향 집 장독대의 장맛이 코끝에 다가온다.

입동이 지나자 어머님은 찬바람을 등져 앉아 쭉정이 콩을 골라냈다. 마당 모퉁이에서 물 불린 콩을 옮겨 담은 아버님이 무쇠솥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웠다. 무르익은 콩이 구수해지자, 솥뚜껑을 열어 보던 어머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아버님이 재빨리 장작불을 끌어냈다. 물컹해진 콩이 솥에서 나와 떡 반죽처럼 뭉그러지더니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다 메줏덩어리가 되었다.

정월 선들바람이 불어오면 아버님은 빈 항아리에 지푸라기를 넣어 퀴퀴한 냄새를 태우고 묵은 재를 털어냈다. 항아리에 소금물을 반 정도 채워 숙성된 메주를 넣었다. 길들지 않은 메줏덩이들이 까치발로 올라선 자리에 누름돌 두어 개를 넣어 잠재우고, 숯덩이와 붉은 고추를 띄웠다.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듯 어머님은 하얀 천으로 항아리 부리를 감쌌다.

아버님은 오십 대에 세 아이를 모두 가슴에 묻었다. 참척의 고통에 아버님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한 되짜리 술병과 긴 담뱃대만 붙들고 하루하루를 견뎌 나갔다. 조강지처인 큰어머님은 모든 게 당신 탓으로 여겼던지, 삼십 초반인 어머님을 한 울타리에 들였다. 젊은 어머님과 나이 든 아버님. 동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은 바늘처럼 어머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어머님은 여섯 남매를 낳았다. 황폐해진 땅에도 봄꽃이 핀 것일까. 복사꽃을 닮은 어머님은 아버님보다 한 뼘이나 컸다. 두 분이 함께 길을 나설 때면 앞서가는 어머님 그림자가 먼발치에서 보일 만큼 떨어져 뒷짐 지고 따랐다. 젊은 아내에 대한 아버님의 배려였을까. 무슨 일이든 어머님 뜻을 존중했고, 당신은 묵묵했다. 하물며 늦잠 자는 아이들이 깨일세라 조심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그럴수록 어머님의 기세는 바람을 만난 연처럼 하늘을 날았다.

내가 시집가던 해에 아버님은 팔순이었다. 손주 같은 며느리가 아기를 낳자 손수 꼰 새끼줄에 숯을 끼워 처마 밑에 매달았다. 돌덩이 같은 아픔이 되살아났던 것일까, 삼칠일 동안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문밖을 서성이곤 했다. 둘째 손주가 태어났을 때는 붉은 고추와 숯을 끼운 금줄을 정낭 위에 쳤다. 하찮은 미물마저 마음에 걸렸던지, 긴 올레와 마당을 황소걸음으로 오갔다.

해가 갈수록 아버님은 말이 적어지고 중얼거리는 게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순도순 지내는 손주를 눈이 닿도록 쳐다보던 아버님이 말했다.

“고놈 참, 꽃이 요렇게 예쁠까.”

말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어머님이 불쑥 내뱉었다.

“내가 아들을 낳았으니 ….”

말없이 슬그머니 난간으로 나선 아버님이 담뱃대에 불을 붙여 깊게 내뿜었다. 담배 연기는 마당 한구석을 휘돌다 어슴푸레한 공중으로 사라졌다. 가문 땅에 비처럼 오신 어머님과 부부로 살 수 있었던 힘은 마치 콩이 익히고 으깨져 숙성된 메주처럼 살았던 것일까. 바람 맛이 든 메주가 항아리 속에서 제대로 된 장맛을 내듯, 두 분도 그렇게 익어간 것이리라.

장 담근 항아리를 양지바른 장독대에 앉혔다. 벌써 장 익는 냄새가 꽃향기처럼 뜰에 그윽한 것 같다. 이번에 담근 된장은 예년과 달리 그 맛이 기대된다. 아직은 두 분이 담근 장맛만큼은 못하겠지만.

저녁에는 묵은 된장에다 배추를 송송 썰어 된장국을 끓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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