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벡 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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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편집국 부국장겸 서귀포지사장

‘지프(Jeep)’는 2차대전 당시 미국 육군 보급부대에서 개발된 4륜구동 차량으로 마력이 강해 험한 지형에서도 주행하기 쉬워 지휘차량, 정찰차량, 경화기·탄약·병력 수송 차량 등 군용으로 다양하게 이용됐다. 원래는 상품명이었지만 지금은 4륜구동 차량을 통틀어 이르는 단어로 고착화 됐다.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재될 정도로 특정 상품명이 일반명사화 된 케이스다.

1980년대 이전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머리를 기르다 학교에서 단속에 걸려 ‘바리캉(bariquand)’으로 머리카락 일부를 깎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발소나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는 기구인 ‘바리캉’도 프랑스의 이발 기구 제조 회사 이름에서 유래됐다.

공사 현장에서 땅이나 암석을 파내는 장비를 지칭하는 ‘포클레인’도 정확한 이름은 ‘굴착기’다.

포클레인은 굴착기를 만든 프랑스 회사 이름인 ‘포클랭(Poclain)’에서 나왔다. 굴착기를 국내에 수입했을 때 장비에 써 있는 회사 이름을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 그대로 굳어진 사례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유압을 이용해 기계 삽으로 땅을 파내는 차’로 등재됐다. ‘삽차’, ‘굴착기’, ‘포클레인’ 모두 같은 말이다.

‘트렌치 코트(trench coat)’의 원형은 영국의 토머스 버버리가 발명한 개버딘 천을 소재로 한 방수용 코트다.

제1차 세계대전에 군복으로 채택돼 참호전에서 유용하게 쓰이면서 트렌치 코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뛰어난 실용성과 멋으로 시간을 초월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이 디자인은 대부분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지금은 ‘트렌치 코트’보다 ‘버버리 코트’가 더 널리 쓰인다.

토양에 피복을 씌워 수확한 감귤은 일반 노지 감귤보다 당도가 높아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 인터넷을 비롯해 각종 홍보 매체를 통해 ‘타이벡 감귤’로 소개되면서 소비자들에게는 고품질 감귤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타이벡’은 미국 듀폰사가 개발·판매하는 합성 고밀도 폴리에틸렌 섬유제품의 이름이다.

통상적으로 물은 흡수되지 않으면서 공기는 통하는 흰색의 기능성 피복 소재를 의미하지만 엄연한 특정사의 제품명이다.

‘타이벡’과 유사한 기능성 피복 소재인 ‘하이브릭스’, ‘멀티시트’ 등을 쓰는 농가들도 감귤을 판매할 때에는 ‘타이벡 감귤’로 홍보한다.

기능성 피복 소재를 이르는 말이 ‘타이벡’으로 고착화 됐기 때문이다.

최근 제주지역 친환경 스타트업 ‘푸른컵’이 타이벡 상표권을 보유한 미국의 다국적 회사인 듀폰사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농민들이 과수원에서 사용한 토양 피복 자재를 활용해 가방 등 친환경 제품으로 내놓으면서 언론사에 보낸 보도자료가 문제였다.

이 업체는 ‘감귤밭 폐타이벡, 친환경 굿즈로 산뜻한 부활’이라는 자료를 통해 감귤밭에서 사용되는 토양 피복제를 ‘타이벡’이라는 용어를 썼다.

뒤늦게 확인한 결과 보도자료에 사진에 쓰인 제품 원단은 ‘타이벡’이 아닌 ‘하이브릭스’ 원단이었다.

이 업체는 ‘하이브릭스’와 ‘타이벡’ 원단을 구별하지 않고 업사이클 소재로 썼는데 ‘하이브릭스’ 원단 사진에 ‘타이벡’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향후 듀폰사에서 자사 제품을 쓰지 않는 농민들에게 ‘타이벡’ 브랜드를 사용하지 말도록 요구하지 말란 법이 없다. ‘타이벡 감귤’에 대한 농정당국의 선제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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