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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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대표·산림치유지도사/ 논설위원

비가 오면 빗물이 모여 흐른다. 스스로 흘러갈 길을 찾는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뚫는다.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작은 도랑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도랑은 더 많은 빗물을 불러들인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도 자신이 뚫은 길을 고집한다.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리고 거대한 하천을 만든다.

제주의 하천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한라산 백록담을 기점으로 쏟아지는 빗물이 한라산 등성이를 타고 아래로 흘러넘친다. 그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빗물의 작품이다. 고도가 심한 남북사면 작품이 도드라진다. 북사면의 탐라계곡과 남사면의 산버른내 협곡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빗물의 작품은 크고 작은 하천 143개다. 총 유로가 1907㎞에 이른다. 이 중에 지방하천으로 분류된 하천은 60개다. 이의 총 유로는 603.7㎞다. 그 모양도 다양하다. 본류가 만들어지면 지류들이 모여든다. 상류에서 하류로 갈수록 빗물의 양은 많아지고 지형도 넓고 깊다.

그래서 하천 하면 물이다. 물의 장소다. 하천 따라 흐르던 물은 대부분 바다로 간다. 일부는 땅속으로 스며들어 저장된다. 그 물이 다시 땅 위로 솟아올라 용천수가 된다. 물웅덩이에 고인 물도 있다. 일명 ‘소’다. 부르기 쉽게 이름도 붙였다. 이렇듯 제주인들은 하천을 가까이했다. 물을 기반으로 한 하천문화가 형성됐다.

그 시원은 원시시대부터다. 하천 변에 있는 빌레못동굴이 그렇다. 선사시대에는 하천 동굴을 집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바위그늘집자리가 그것이다. 문명을 일으켰다.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마을을 이뤘다. 물이 풍부한 하천 하류 해안가로 몰렸다.

제주시 관내에만 하더라도 산지천, 병문천, 한천 등을 들 수 있다. 행정의 중심지를 형성했다. 그 옛날 아낙네들이 산지천 마실 물을 물허먹으로 져 나르는 사진 모습이 생생하다. 어린이들의 물놀이 장소는 물론 어른들의 물맞이 장소이기도 했다.

식수원 개발이 확대되면서 하천은 정수장이나 취수장의 원천 역할을 했다. 식수원 공급처였다. 하천은 마을과 마을을 구분하는 경계선 역할을 했다. 하천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나누거나 마목장 10소장을 뒀다. 가축을 일정한 지역에 가두는 울타리 역할도 했다. 그래서 하천은 물을 바탕으로 한 생활 공간이었다.

이외에도 하천은 풍류의 장소였다. 오늘날처럼 놀이 공간이 다양화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빼어난 하천 계곡이 최고의 장소였다. 한천의 용연이나 방선문이 그렇다. 광령천 하류 월대나 옹포천 상류의 명월대, 연외천 하류의 천지연폭포 등지도 마찬가지다. 성읍리 소재 천미천 정소암은 화전놀이 장소이기도 했다. 다양한 하천문화를 낳았다.

물론 지금은 식수 공급의 다양화와 주거문화의 발달로 하천 생활이용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하천 풍류도 재현하는 축제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그만큼 하천문화는 과거의 추억으로 남았다. 그러함에도 하천문화는 새로운 방향 모색도 시도되고 있다.

그것은 하천치유다. 물이 만든 울퉁불퉁한 하천 바닥의 자갈과 바위를 조심조심 밟으며 걷는다. 위험의 긴장감도 있다. 절벽 경사지에 위태롭게 뿌리내리고 자란 울창한 숲과 계곡을 감상한다. 습기와 음이온이 많은 물길 따라 호흡한다. 지난날 제주인들이 꽃피웠던 하천문화를 찾아 공감하며 느낀다.

그리고 작은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평평한 바위에 앉아 준비한 차 한 잔으로 여유를 갖는다.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사라진다. 더 없는 하천치유 활동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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