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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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이런 질문이 나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땅은 어떤 곳인가?” 그렇게 질문하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땅은 반성하는 자가 서 있는 그 곳이다.” 그러니까 탈무드는 부동산 가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돌이키는 반성과 회개의 소중함을 말하려는 것이다. 마음을 돌이키는 일의 소중함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마음을 돌이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는 점도 알리려는 듯하다.

가끔 고향에 가면 항파두리를 찾아가서 그 둘레를 걸을 때가 있다. 그 곳이 나에게는 소중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1983년 늦가을에 나는 정처없이 항파두리 둘레를 걷고 있었다. 항파두리 남쪽에 있는 어느 과수원에 머물면서 “이후의 진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20대 후반까지 과학도였던 나는 신학으로 돌이키는 과정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둘레를 정신없이 걷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으로부터 신학으로 돌이키는 과정에서 방황하며 고심하던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다.

유대인들이 최고의 인물로 여겨온 모세는 돌이킨 이후에 그렇게 되었다. 이집트의 왕족으로 살던 모세가 어느 날 갑자기 히브리민족을 위하여 혁명적인 행동을 하면서 이집트에서 쫓겨난 것이고, 수십년 광야 생활 이후에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히브리 민족 최고의 지도자 모세는 극에서 극으로, 정반대 편으로 돌이킨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돌이키는 과정에서 모세가 겪었던 인간적인 고뇌와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어렵고 심각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돌이키고나서 그를 통해 이루어진 일은 구약성경의 핵심주제가 될 만큼 고귀한 이야기가 된 것이다.

마음을 돌이키는 이야기를 계속하려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생각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푸틴이나 중국의 시진핑이나 북한의 김정은은 마음을 돌이키는 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흐름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유물론적 사회주의라는 사상 자체가 종교적 구원이나 회심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나 중국이나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돌이킴을 기대하기보다는 갈 데까지 가서야 일단락되는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정치계나 종교계는 이대로 계속 돌이킴이 없고 변화도 없이 갈 데까지 가야만 하는 것인가?

그들 안에 심각한 잘못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그런 방향으로 계속 가서는 안될 것 같은데, 그런데도 돌이키는 사람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심각한 오래된 잘못이 있으되 돌이키는 사람은 없으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부동산 가치의 폭락과 함께 삭막한 미래의 위협을 마주하고 있는 형편이다.

어느 전쟁 영화를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대사를 들었다. “옳은 길을 걷다가 죽어간 사람만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하게 된다”는 대사였다. 그 대사를 거꾸로 하면 이렇게 될 듯하다. “옳지 못한데도 계속 이렇게 걸어가는 우리는 후손들의 마음을 차지할 가능성은 없을 듯하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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