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에도 감사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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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산의 정상과 그 언저리로 어깨를 겯고 총총하게 이어지는 오름, 거기에 얼마 전 내린 눈으로 아름다운 설경까지, 거실 창문을 통해 한라산의 자태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 이럴 땐 저 유리문이 통창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욕심을 내어 봤다. 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잘 깎은 연필로 이어지는 산과 산 사이, 그리고 백의(白衣)를 차려입은 골과 골이 두툼한 흰옷의 무게에 늘어지듯 이어지는 곡선과 그 깊이까지 눈 주어 그려보았다. 거기에 어쩌다 실없는 농담처럼 햇빛이라도 한 줄기 보태지면 한라산의 풍경은 온통 은빛이다. 좋다.

그림에 소질이 조금만 있어도 실경을 오롯이 화폭에 표현해 낼 것 같은 생각을 꿰며 자연의 풍광에 매몰되던 차, 뜬금없는 소리로 그 생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막 세 살 된 손자가 저 소리를 들었다면 ‘이용이용’하는 소리를 따라 하며 아마 종종걸음으로 넘어질 듯 창밖을 훑었을 게다. 사고가 있었는지 앰뷸런스가 경보음을 내며 다가오자 달리던 차량들이 차선을 얼른 비워주는 모습과 그 곳을 통과하는 구급차가 내려다보인다.

당연한 일을 당연히 하고 있지만 그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넉넉해졌다. 당연하고 으레 그래야 하는 것도 반복된 학습에서 오는 변화된 행동이다. 처음부터 시민의식이 그렇게 뛰어날 리는 만무했을 테니 말이다. 언젠가 필자도 구급차에 의지한 적이 있었다. 뼈가 상하는 사고로 인하여 여기저기 신세를 졌었다.

이후 퇴원하여 지나는 행인들이 신고해 줘서 구급차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고맙다는 마음이라도 전하고파 수소문했었지만, 병원에 오랜 기간 머물다 보니 그도 어려웠다. 전하려던 마음의 무게감만 더했던 기억이 있다. 구급차도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니 우리가 쓰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그러나 당연한 건 당연한 것이고, 고마운 것은 또 그대로 고마운 일이다.

달포 전쯤 일이다. ‘경찰에 민원 협박’이란 글이 올라와 많은 이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는 말을 라디오를 통하여 처음 들었다. 집안일로 오가며 들은 이야기에 별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생각하다 말았다. 좀 한가해지자 아까 들었던 내용이 궁금해 그 기사를 검색해 봤다.

기사의 내용은 늦은 밤, 신고 들어와 경찰이 출동해 보니 고교생 두 명이 있었고 ’막차가 끊겼으니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내용부터 시작이었다. 출동한 경찰은 어렵다는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했음에도 미성년자임을 내세우며 계속 요구했다고 한다. 여기에 학부모들이 개입되면서 일은 더 복잡하게 꼬여, 이런 글을 올리게 되었다며 그때의 상황을 밝히고 있었다. 그 기사를 본 네티즌들로부터 학생과 부모들은 저지른 일성머리에 대하여 뭇매를 맞고 있었다.

일에는 경중도 있고, 순서도 있고, 상황에 따른 변수도 있기 마련이다.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된다고 하여 막무가내로 내 고집을 세우거나, 목청 높이는 것은 조심하고 자제해야 할 부분이다. 안 되는 일에 자기주장을 반복하며 거칠게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일을 떠나 인성 문제가 되기 쉽다. 좋은 게 좋은 것으로 수용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일은 흔치 않다. 측은지심의 발로였든, 친절에 의한 것이든 배려를 당연한 권리처럼 각을 세우는 몰염치는 참 피곤하다. 타인을 향한 배려,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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