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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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재릉초등학교 교장·수필가

차 안 가득히 볼륨을 높였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왈츠가 흐른다. 쿵 짝짝 쿵 짝짝 부드러운 왈츠 따라 봄의 꽃밭에서 춤추는 상상을 한다. 긴 겨울을 지나 얼음을 뚫고 나온 새싹들은 봄 햇살에 간지럼을 타고 투명한 아침 첫 햇살에 풀잎의 이슬은 영롱하다. 엊그제 온종일 하늘에서 봄비가 내려 우수도 지났으니 물오른 가지마다 생명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저 멀리 초록이 아장아장 걸어온다. 어느새 언덕을 넘고 시내를 건너 들판까지 왔구나.

새 학년 새 학기, 교육과정 수립에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년 시절에는 한 해 시작은 1월 1일이 아닌 3월 1일로 착각했었다. 입학, 새 학기, 새 출발, 설렘, 소망 등 인생의 중요한 시점이 3월 1일에 시작되기에 지금도 나에게는 한 해의 시작은 3월이다. 직업병이다. 떠나는 아쉬움과 시작하는 설렘이 교차하는 교단은 시작하는 봄, 새해 준비 중이다. 3년 만에 대면 입학식을 하려니 어떻게 했었는지 새삼스럽다. 제일 먼저 화려한 꽃무늬에 새로 오시는 선생님들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2023 제주형 자율학교 확정 공문이 내려왔다. 교육공동체 모두의 바람이었던 마을생태학교로 지정됐다. 교무실에서 환성이 터졌다. 앎을 삶과 연계된 깊이 있는 배움을 위해 마을을 잇는 교육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마을은 실천적 앎의 구체적 실현의 장으로 아이들의 삶과 가장 밀접한 공간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인디언 속담처럼 학생의 삶 깊숙이 다가가서 들어주고 이해하고 성장과 배움을 고민했다. 학교 밖으로 나와 내가 나고 자란 마을을 직접 만나고 이해하고 마을에 스며드는 교육활동을 꼭 하고 싶었다.

선인장 마을, 4·3진아영 할머니 생가, 금릉·협재 해수욕장의 올레 14코스 따라 소곱길을 걷다 보면 보말을 캐고 플로깅을 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들은 탐방보고서를 작성하고 마을을 품은 해설사가 되어 마을을 새긴다. 따스한 봄 햇살 아래 하늘 정원 텃밭에서 조잘조잘 모종을 심는 아이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물을 주고 작물을 가꾸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모든 생명체는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해 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을의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주인공으로 애향심이 생기고 자신의 삶을 가꿔나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에 공감하는 학부모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은 가슴을 뛰게 한다. 코로나19로 실시하지 못했던 차를 마시는 다도 교육도 할 수 있게 되어 벌써 마음은 바쁘다. 차향 가득한 교장실에서 직접 차를 내리고 친구에게 권하면서 아이들은 마음을 다스리고 기다림을 배워간다. 배움과 나눔의 기쁨을 경험하면서 성장해 갈 것이다.

퇴근길인데도 해가 다 지지 않아 남아있다. 해가 막 지려는 저 지평선 끝만 밝을 뿐인데, 저물어 가는 부드러운 황금빛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불과 두어 달 전 만 하더라고 시내에 들어오면 쓸쓸한 어둠이 깔렸었는데 앞으로 점점 더 밝아질 걸 생각하니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다. 인생은 나아가는 것, 수업의 질 향상을 위한 업무경감이라지만 되려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매달 매일 매 순간들을 업무와 함께 달리는 것 같다.

시작하는 봄이 초대장을 보내왔다. 퇴근길의 황금빛 해도, 겨울 끝자락의 쓸쓸함도 모두 희망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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