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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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입춘을 며칠 앞둔 설날이다. 곧 봄이 온다는 예고처럼 겨울비가 내린다. 겨우내 유리창에 달라붙은 얼룩덜룩 묵은 먼지가 물방울을 타고 씻겨 흐른다. 뿌옇던 유리가 말갛게 깨어나는 하늘처럼 투명하다.

공원 숲에 애기동백이 붉은 꽃잎을 낭자하게 떨구더니, 성급한 매화 몇 송이가 나목의 가지 끝에 흰 꽃을 달았다. 꽃이 귀한 철이라 잠시 발길이 머물곤 한다. 맹물만 길어 올려 무엇으로 저리 깊은 체취를 흘리는지. 매화같이 기품 있는 향기를 품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서로 바라만 봐도 심장이 뛰는 것은 사랑일 것이고, 외롭고 배고픈 자를 품어 온기를 나누는 건 인간의 고귀한 향기가 될 것 같다.

비 오는 창가에서 종일 마음이 서성이며, 군자란과 긴기아난에 시선이 머물곤 한다. 혹 꽃대가 올라오나. 나날이 기다림은 성급하기만 하다. 해가 잘 드는 쪽으로 분을 옮겨주며 염려가 앞선다. 해 다르게 꽃 피우는 게 예전만 못하다. 분 가득 황홀했던 시절은 생의 절정기였던가 보다. 유백색 꽃이 향기로운 긴기아난, 갸름한 얼굴에 목을 길게 뽑아 올린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여인 같은 군자란. 우리 집 봄 전령사이자 반려 식물이다. 잎과 줄기에 윤기를 잃고 청청한 빛을 잃어가는 걸 보면서 그 삶을 헤아려 보곤 한다. 곁의 새순에 자리를 내어주고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아 연민의 눈길이 오래 머문다.

아직은. 해가 바뀔 때마다 달력을 펴 놓고, 양력과 음력의 경계선에서 갈등하는 시기다. 새해 새로운 날을 받아 든 심정은 착잡하다. ‘설날까지는 아직 멀었어. 진짜는 그때부터야.’ 단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만 할 수가 없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일 년 전 모습은, 그만 단념하고 인정하라는 현실적인 답이다. 나이가 한 살 얹히는 내 속셈은 언제나 뭉그적거린다.

아홉 수를 넘길 적마다 별다른 감정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자 다독거린다. 초반의 여유가 중반을 넘어서면, 밀물처럼 다가오는 막바지 숫자의 빠른 걸음에 숨이 턱 막힌다. 젊은 시절은 해를 넘길 때마다 꽃처럼 보얗게 핀다고들 했다. 인생의 봄 같을 때, 예쁘지 않아도 나이만으로 건강한 아름다움이 빛나던 시절이었다.

겨울과 봄의 경계, 젊음과 늙음의 경계. 중요한 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가 아닐까. 무엇을 의식하고 산다는 건 아직 건재하다는 존재감이다. 사고의 뜰이 풍성하면, 몸이 노쇠해도 정신적인 젊음을 유지하는 데 윤활유 같은 역할이 될 수 있으리라. 끊임없이 머릿속 필름을 녹슬지 않게 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나이 듦을 물리고 싶은 욕구가 가장 크다. 시작은 여가를 즐기기 위한 출발이었지만, 어느덧 글의 목적과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에 골몰하게 된다. 매일 반복의 일상이지만,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깨달았다. 소소한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지난 일에 아쉬움을 갖지 말기를. 그렇다고 행복했거나 불행했거나,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다만 내 글은 늙지 않기를 소망한다.

연초가 되면 새로운 계획이나 허망한 기대감에 연연해 매이지 않으려 한다. 그래봐야 자신을 옥죄는 족쇄일 뿐, 손익계산서에 남는 게 없었다. 하루가 무탈해 잠자리에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아직 멀었어.’ 이렇게 주술을 걸어 남은 날을 엿가락처럼 늘리며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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