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야 할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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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봄기운이 내 뜰에도 완연하다. 찬바람에 침묵하던 나목들도 함성처럼 움을 틔우고 새잎을 활짝 펼치느라 분주한 것들도 있다. 얼마 전부터 백매가 허공에 하얀 웃음을 아낌없이 건넨다. 꽃의 영광은 길지 않을지라도 한 해의 큰 목표를 완수했으니 가는 길 느긋할 테다.

아름다운 새해 소망을 품었을 사람들의 마음 밭엔 어떤 싹들이 자라고 있을까 생각다 친절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사회생활의 윤활유가 아닌가. 볼일로 관공서나 은행 같은 곳을 찾았을 때 담당자의 어조에서도 온도 차이를 느끼곤 한다. 사무적인 삭막함이 아니라 약간의 관심과 친절이라도 섞이면 기분이 좋아진다. 친절은 작은 투자로 큰 수확을 얻는 일이다. 그를 감사하며 좋게 기억할 테니까.

지난 연말의 일이다. 책 몇 권 부치러 지역 우체국에 들렀었다. 꽤 많은 사람이 택배를 부치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려면 한참 시간이 걸리겠지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다. 이내 젊은 여성 도우미가 다가오더니 택배를 부칠 것이냐 묻는다. 일반 우편물이라고 하자 도와드리겠다며 한쪽 벽면에 놓인 우편 자동 접수기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출입구가 두 곳이라 나는 한쪽으로만 드나들어서 그런 기구가 있는 줄도 몰랐었다. 그녀는 책을 한 권씩 투입구에 넣으며 카드결재를 하고 금방 일을 마친다. 어찌나 고마운지 몰랐다.

인사도 즐거움을 나누는 일, 동네 조그만 LPG 배달업체 사장님이 떠오른다. 주문하면 우리 집에 주로 종업원이 오지만 사장님이 직접 올 때도 있다. 60대를 바라볼까 싶은, 작은 체구의 사장님은 좋은 일이 생긴 양 지난해부턴 유별나게 인사를 잘한다. 어둑새벽에 운동으로 길을 걷노라면 배달 트럭을 몰고 뒤따르다 차를 멈추며 인사하고 지날 정도다. 오른쪽으로 약간 기우뚱거리는 걸음걸이를 보며 나를 알아채는 걸까, 그래도 이건 파격이다.

올해는 나의 걷기 시간을 기다린 건지 마주치자 곶감 상자를 새해 선물로 주었다. 간단한 인사말 외엔 나눈 적도 없는데 고객 관리 차원인가 생각하다 순수한 선의를 의심하면 안 된다고 내 마음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나무를 좋아한다는 연결고리를 떠올렸다. 내가 마당에서 취미로 분재를 키우는 데 비해 그는 정원수들을 잘 가꾸어서 옆을 지날 때면 눈길이 끌린다.

이와는 달리 밝음과 반대편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다. 일전 가랑비 내리는 아침에 걷기운동을 나섰다. 우산을 쓰고 편도 2차선 차로와 접한 보도를 따라 무심히 걷고 있는데 별안간 얼굴까지 물벼락을 맞았다. 배수가 안 돼 물이 많이 고인 것도 문제이지만 심술보가 터져버린 사람처럼 질주한 운전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잠깐 서행하는 약간의 배려에 그리도 인색하다니.

동네엔 큰길로 연결되는 좁은 도로가 있다. 일반 승용차가 마주치면 하나는 좀 넓은 곳에서 기다려야 교차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끔 대형탑차나 화물차가 들어선다. 운 좋게 무사히 통과하면 좋겠지만 머피의 법칙을 알리듯 한두 대의 차량과 마주치기 일쑤다. 이럴 땐 덩치 앞에 짓눌려 작은 차들이 슬슬 후진해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대형차는 큰길로 운행하면 좋으련만.

작은 차이가 실은 큰 차이라는 말이 있다. 삶에서 소소한 친절이나 배려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살맛 나게 하는 씨앗 한둘 심어 마음의 뜰이 풍성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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