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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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주 / 수필가

짜장면을 먹을 때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까무잡잡한 막내와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이다. 한 푼이 아쉬웠던 그 시절에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건 특별한 호사를 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음식이 아릿한 통증으로 가슴에 박혀버린 건 그날의 이야기 때문인 듯하다.

사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직장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짜장면을 먹게 되었다. 어찌나 입에 감기던지, 집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 생각에 한올 한올 세며 먹었다. 첫 월급을 받고 일요일에 짜장면을 시켜서 온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던 날,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어머니가 잘 먹었다는 그 말에 ‘그래, 나는 가장이다!’ 주먹을 불끈 쥐며 쏟아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동생은 짜장면을 먹은 날이면 그림 일기장에 ‘오늘은 짜장면을 먹었다’라는 제목에 검은색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최고로 맛있다. 누나가 사줬다’라는 글을 보고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직장을 다니며 살아가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내가 지키겠다며 결혼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어느 겨울 날 막내동생이 병원을 다녀오다 짜장면집 앞을 지날 때였다. 어머니와 손잡고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 집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눈치를 채고 동생을 데리고 들어가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켰다. 동생이 먹는 동안 어머니는 문밖에서 쳐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혹여 아들이 주저할까 봐 그 추운 날 짜장면 냄새도 싫다며 밖에서 지켜보신 어머니. 그 깊고 넓은 어미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동생은 허겁지겁 먹다 밖을 보니 창문 너머로 어머니가 방긋 웃어주셨다고 했다.

일주일에 세 번 혈액투석을 받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오던 날 문득 짜장면 생각이 나서 중국집에 들어갔다. 짜장면을 시켜 놓고 어머니에게 막내 이야기를 꺼냈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시치미를 뗐다. 어머니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아버린 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어머니 그릇에 내 몫의 짜장면을 듬뿍 덜어드리며 모르는 척 “맛있지요?” 능청을 떨었다. 그 옛날 동생이 맛있게 먹고 어머니는 밖에서 기다렸던 그 집이었다.

짜장면 한 그릇값을 아끼면서 식구들 끼니 걱정으로 문밖에서 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배불러 하셨던 어머니. 철이 든 그 아들이 먹고 싶은 것은 뭐든지 사드리고 싶었는데 많이 아프셨던 어머니는 그마저도 누리지 못하시고 이제는 세상에 없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동생은 어머니를 닮았다. 체질과 성정 얼굴도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짜장면집에 가서도 자식들이 다 먹을 때까지 저어주고 면도 먹기 좋게 잘라준다. 입가도 닦아주고 자기 몫까지 아이들 그릇에 얹어준다. 고깃집 가서도 마지막에야 남은 고기를 먹는다. 짜장면의 기억이 그리 아팠을까. 그 시절 아픈 것도 잊게 할 만큼 맛있게 먹었던 짜장면이 지금은 싫다고 한다. 철없는 자신은 추운 겨울 어머니를 밖에 세워놓고 짜장면 한 그릇을 다 비웠다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어느 대중가요 가사처럼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랫말이 어쩌면 그렇게 자기 이야기 같은지 두고두고 목이 멘다는 고백이었다. 그 옛날 짜장면이 목에 걸리는 동생의 사모곡이 하늘에 가닿을까. 이제는 하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야 하는 동생과 나는 엎드려 어머니를 부를 뿐이다.

짜장면을 시킬 때면 탕수육에 군만두까지 곁들이는 현실이다. 쉽게 사 먹을 수 있고 흔한 음식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특별한 음식이다. 타국에 있어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해 더욱 한 맺힌 동생은 잠깐의 출장에도 산소를 찾는다. 자신은 불효자라 자책하는 동생이 외국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함께 어머니 산소에 짜장면 한 그릇 올리고 싶다. 식어서 떡이 된들 어떤가. 아직도 동생의 가슴에 얼음처럼 굳어 있는 그때의 응어리가 녹아내릴 수 있게. 그리고 그 옛날 그 집에서 동생에게 짜장면 한 그릇 먹이고 싶다. 어머니도 그날처럼 흐뭇하게 웃으며 지켜보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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