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주년 삼일절, ‘그날’의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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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 논설위원

104주년 3·1절 기념식은 패러독스를 연출했다. 일제의 악랄한 고문을 받고 죽어가며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이라는 말을 남긴 유관순 열사를 기념하자고 세운 기념관에서 대통령이 선언했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로 변하였습니다.”라고 했다. 삼일절 기념사로 이렇게 짧고 타격감 높은 선언이 있었을까?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했는데, 그것은 침묵을 강요한 것이 아니다. 내면 성찰을 통해 인간 상호 간 벌어질 충돌이나 부정적 효과를 경계하며 말하라는 것이다. 대중과의 소통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키곤 하는 윤 대통령의 노심초사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려는 욕망을 고집스럽게 이번 연설에 담았다. 눈 밝은 대중은 금방 알아보는 듯하다.

윤 대통령의 논법은 타당한 추론 과정을 부정한 것이다. 3·1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을 통해 돌아볼 수 있는 것은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라는 것,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사를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거기에 얹어서 일본이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가 되었으니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얼토당토않은 ‘친일 선언’을 이끄는 비논리다.

3·1운동은 자유·평등·평화를 지향한 운동이었고, 그것은 현재의 양극화나 북핵 위기, 열강들의 패권주의 위기 등을 극복할 정신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해야 합당하다.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어야만 화해하고 협력할 수 있다. 그런데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어 놓고서도, 여전히 강제동원 사죄와 배상도 없고 독도를 일본 영토라 주장하는 등 일본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다. 따라서 일본과의 화해·협력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어렵다. 그런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의 협력 파트너십은 가능하다. 이랬어야 했다.

어떻게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해야겠다는 욕망이 3·1운동의 정신을 훼손하고, 굴욕적 외교를 서슴지 않게 만든 것이겠다. 거의 모든 일본의 매체가 윤 대통령이 강제노동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일본을 협력 파트너라 규정했다며 함박웃음을 웃었다. 그러고서 결국 3월 1일 일본 정부는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은 어떠한 형태의 피해 보상에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정부는 일본 피고 기업의 참여가 없는 피해 보상을 진행하거나 추가 협상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에서 유관순은 감방에서 고드름이 녹을 즈음 정확한 ‘그날’을 알 수 없어 노역을 자처한다. 그날은 아우내장터에서 목숨을 잃은 부모님의 추모일이기도 했고 3·1운동의 날이기도 했다. ‘그날’이 되자 만세를 외치지 못하게 한 감옥은 만세의 다시금 진앙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날’의 가치와 의미를 호도하려는 선언은 또 다른 만세운동을 불러일으키는 진앙지로 작용할 수 있었으니 경계하고 경계할 일이었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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