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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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익, 시인·수필가·문학평론가

명예퇴직을 하고 과거에 만 10년 동안 감귤농사를 지은 일이 있다.

보름 넘게 계속됐던 귤나무의 정지전정, 무너진 밭둑 보수하기, 농약살포 등을 했다. 농약살포를 권총 형 노즐로 할 때는 잠시 왼손으로 하기도 했다.

왼손의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어느 서예가는 왼손으로 대성했음을 익히 알고 있다. 보통 사람으론 생각하기 어려운 각고 끝에 이루어 낸 승리일 것이다.

오른손과 오른팔을 혹사하기 마련인 농사일을 하다가, 문득 이제부터라도 왼손과 왼팔을 훈련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에 불과했지만, 한 손으로 잡을 수밖에 없는 권총 형 노즐로의 농약살포를 왼손으로 바꿔 봤다.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었지만, 왼손이 일하는 동안 오른손이 잠시 쉬었다.

왼손이 듣는 사람은 왼손의 사용에 불편을 전혀 느끼지 않는 줄 안다.

왼손의 사용이 불편하지 않은 경우에도 전화의 수화기를 왼손에 잡았다고 말을 듣는데 지장이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이 오른손에 잡는다.

오케스트라를 직접 감상해 본 적은 없다. 오른손만큼 왼손의 사용빈도는 적지만, 중요한 대목에선 오히려 더 진가를 발휘하는 느낌이었다. 교회에서 성가대의 지휘자는 왼손으로 크게 악센트를 주면 성량이 최대가 됨을 본다.

며칠 전 초등학교 혼성동창회가 있었다. 배우자는 빼고 오로지 같이 공부했던 벗들끼리의 모임이다. 한 동창의 제안으로 저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만나면 즐겁다. 노래에는 아픈 삶을 치유해 주는 특별 효능이 있는 걸까. 1차 식사와 소주자리가 끝나면 2차는 단란주점으로 예정된 것이, 국제음치인 나로서는 조금 괴롭다. 더욱이 올해는 회장을 맡고 있어서 빠질 길도 없다.

노래는 못하지만 제멋대로 막춤에는 일가견이 있는데, 무선마이크가 아니어서 그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99%가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잡는다.

문득 나도 이제껏 오른손에 마이크를 잡았음이 생각났다. 마이크를 왼손에 잡으면 율동이 가능할 것이다. 음치라는 이유로 노래방 소리만 들어도 떨려오고, 가기만 하면 가시방석이었다. 스트레스를 누가 알까. 왼손에 마이크를 잡으면 막춤은 자유롭다.

7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조금 독단적이셨다. 모든 결 당연히 훈련되지 않은 왼손처럼 어머니는 무슨 결정이나 판단을 거의 하지 못했다. 옆에서 보면서 딱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왼손의 능력은 하루아침에 오른손과 같아지지 않는다. 그래도 훈련의 효과는 있을 것이다.

왼손은 2등이 아니다. 그럼에도 성인이 되도록 오른손에만 열중했는데, 왼손도 훈련시키면 좋을 것이 아닌가.

장남인 입장이라 일 년에 명절, 제사를 다섯 번 치른다. 아내가 이번 제사 때 음식 마련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머니에게 묻는다. “난 모른다. 알아서 해라”가 돌아오는 답이다. 처음엔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로 오해했다. 아직 76세로 치매도 아니고 건강함에도 결정을 해 본 일이 없으니까 그러실 뿐이다. 마치 왼손을 사용해 보지 않은 일에 왼손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다.

왼손은 오른손의 그늘에 묻혀 있어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내일 다시 농약살포 작업을 한다. 우선은 더 힘들겠지만, 왼손으로 노즐을 잡고 일을 해 볼 생각이다.

왼손은 2등이 아니다. 단지 훈련이 안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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