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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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 수필가

살면서 근심 없이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재산이 없는 것을 근심하면서 부유한 사람의 즐거움을 부러워하고 있으나,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대로 근심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오늘도 텔레비전 화면에 대통령의 동정이 뉴스로 전해졌다. 대통령은 세상의 온갖 권력과 즐거움을 다 누리고 살까? 오히려 우리 같은 일반 서민들보다 훨씬 근심이 많고 자심(滋甚) 할지 모른다.

나는 한동안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친구들이나 문학동아리 문우(文友)들이 안부 전화를 해 올 때면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요?” 한다. “아니, 요즘 괜스레 마음이 우울하네.” “아, 김 법사(法師)님이 우울증이라니, 그럼 우리 중생은 어쩌라고요?” 하며 한바탕 웃어넘긴다.

‘긴 병에 장사 없다’더니, 여러 해 기약도 없는 병원 오가기를 계속해도 별 차도가 없다. 고통 속에 지쳐가는 아내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우울증이 생기나 보다. 그렇더라도 환자인 아내 앞에서는 표정 관리를 잘해야 한다.

어젠가 문학 스승이신 관여 맹난자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위안 삼는다. “병도 삶의 일부인걸요. 잘 보듬고 데리고 살아야죠” 스승님 말씀이 귓가를 맴돈다.

명창정궤(明窓淨几).

내가 수필로 등단한 E 문학사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액자에 추사(秋史)가 예서로 쓴 글귀가 있다. 사무실에 갈 때마다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小窗多明 使我久坐(소창다명 사아구좌) 작은 창에 볕이 많아, 나로 하여금 오래 앉아 있게 한다’

나는 무더위가 극성부리는 때를 제외하곤 내 서재를 마다하고 거실과 잇닿은 베란다에서 신문과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명창정궤(明窓淨几),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롭고, 습관처럼 책상 위엔 먼지 하나 없도록 깨끗하게 청소한다. 그리고 방에서 누워만 있는 아내를 데리고 나와 따스한 햇볕을 쬐게 한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명창(明窓)’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明窓淨几坐焚香 頗覺閑中趣味長(명창정궤좌분향 파각한중취미장) 밝은 창 정갈한 책상에 앉아 향을 사르니 한가한 가운데 취미가 거나함을 깨닫네’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특히 정치인들의 말은 늘 살기(殺氣)가 서려 있을 만큼 독하고, 금방 드러날 거짓말도 거침이 없다. 타협과 공생, 정책을 놓고 치열한 토론이 없이 상대편은 무조건 적대시하는 못된 관습이 작금의 여·야의 공통된 행태다. 그러니 젊은 초선의원들이 무얼 배우겠는가? 한심한 노릇이다. 그들도 오늘처럼 볕 잘 드는 창가에 정좌한 후에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처럼 마음을 일깨우는 시 한 수를 읊어봄도 마음 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봄날 오후의 단상 –夏田 김대원

봄볕 따사로운 오후

목련꽃 가뭇없이 떨어져 뜰에 눕는데

떨어진 목련 꽃잎 쓸어 담는 노인

자신을 거두고 있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저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그러다 멈칫 어느새 떨어져 버린 꽃잎을 쓸어 담는 노인에게 시선이 멈춘다. 그가 바로 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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