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脈’이 비탈에 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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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지역 문단에 반듯한 수필 문학단체 하나 만들자 해 나섰다. 2007년 9인의 수필가가 한자리를 틀었다. 섬 서쪽 외딴 벌판에 있던 식당 ‘오름풍경’이 산실이었다. 제주에 비옥한 수필의 밭을 일궈 보자는 꿈이 있었다. 9명으로 회원을 제한한 것은 ‘10을 채워 완성을 바라는, 미완인 채 정예소수를 지향하자’는 당찬 의도였다. 거기 맞춰 가슴 울렁이는 낯선 표방을 내걸었다. 하나, ‘삶의 진실을 치열하게 탐구한다.’ 다른 하나, ‘脈이여, 뻗어라!’

회원은 적었으나 우리 행보는 걸음걸음 지축에 닿았고, 양질의 좋은 수필을 쓰자는 창작에의 열망은 이글이글 도요 속처럼 타올랐다. 마주 앉아 이뤄지던 합평은 의례적 만남이 아닌, 수필을 공부하며 열띤 토론을 벌이던 학습의 장이었다.

새로운 것을 담아내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우리는 겸손했다. 맞춤법을 메모하고 문장도를 위해 수사를 익혔다. 나이 든 사람들의, 아이같이 초롱초롱하던 서로의 눈매를 바라보며 한때 수필을 쓰는 호사에 푹 빠졌다. 입소문이 퍼지며 우리 동인으로 다가오려는 눈길에도 애초의 ‘9명’을 고집하며 손사래 쳤지 않았나.

동인脈을 창립한 지 어언 16년, 코로나19로 비대면에 갇혀 가까스로 냈던 최근호까지 동인지 『脈』 15집을 지역에 내놓았다.

한데 사람의 일엔 우여곡절이 따르게 마련인가. 동인脈이라고 행로가 순탄할 수만 있으랴. 결론부터 얘기하면 험로를 딛게 된 중심에 내가 있었음을 토설한다. 2년째 건강에 빨간불(뇌질환)이 켜지는 바람에 내가 동인脈을 내려놓았지 않은가. 치료에 매진하려 칭병(稱病)할 수밖에 없었는데 소통에 문제가 있었는지, 반향이 씁쓸했다. 수필은 인간학이다. 동인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중환자에게 위로 전화 한 통은 있어야 예의 아닌가. 동인 사이가 이렇게 냉랭하다니, 입김 같은 온기를 바란 건 아니나, 참 가슴 저릿하다.

동인脈이 비탈에 섰다. 자유의사 선택에 맡겨 두셋이 떠나는 모양새다. 야속하다. 최근 모임에서 친구면서 동인脈 창립 회원 월촌이 신임회장으로 추대됐다. 너울 치는 바다 한복판에서 난파선의 이물 고물을 부둥켜안아야 할 책무를 짊어졌다. 부지런에 손매 좋은 그가 나서는데, 소 닭 쳐다보듯 해서 되겠는가. 건강 때문에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형국이다. 마련한 사람 자리를 찾아야 할 때 같다. 이마적에 좋은 심성에 글 잘 쓰는 두셋 따듯이 품고 싶다. 찾으면 있지 않을까. 9명 고집도 버리고 회원도 좀 늘리려는 심산이다.

평생 끌고 가리라 한 동인脈이다. 받치고 붙들고 꺼당겨 가며 끌어안을 길이 있지 않을까.

한때 동인脈 회원들과 작품을 놓고 토론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일들이 떠오른다. 몇 년 문학을 먼저 시작했노라고 욕심을 내기도 했던 건 수필에 쏟은 열정이었다. 혹여 삼가지 못한 것으로 비쳤다면 송구하다. 이해하기 바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나고 듦이 있었다. 인간사 무릇 그러려니 해 고개 끄덕이다가도 한편 휑뎅그렁하다. 시간은 흐른다. 지나간 일, 새삼 아문 상처를 건드릴 건 없다. 이제 와서 그들에게 새삼 무슨 말을 하랴. 순탄한 문운 속에 건필하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만남과 헤어짐이란 끝없이 이어지는 연기(緣起)인 것을….

새 사람 몇 찾아야겠다. 어차피 위기는 넘는다. 인연이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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