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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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미 문화부장

‘본 공연의 관람료는 무료이며, 온라인으로 사전예약하면 된다.’

제주지역의 문화예술공연 관련 기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구다. 연극, 연주, 전시 등 장르 구분 없이 무료가 대세다.

물론 관람료가 정해진 무대도 많다. 그렇지만 1만~2만원을 크게 넘지 않는다. 반면, 10만원을 훌쩍 넘는 공연도 열린다.

지난해 5월 서귀포시는 소프라노 조수미 초청 공연을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개최했다.

공연은 8세 이상 관람가로 관람료는 1층 10만원, 2층 7만원이었다. 특이한 점은 제주도민만 관람권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점이었다.

당시 서귀포시 관계자는 “관광객들이 제주도 여행과 연계해 본 공연을 보고자 하는 문의가 많아 이뤄진 결정”이라고 밝혔다. 티켓 파워에 힘입어 공연은 매진됐다.

이쯤 되면 문화예술 무대에서 무료관람의 목적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제주특별자치도문예회관, 제주아트센터, 서귀포예술의전당.

제주의 대표 공연예술 무대라 할 수 있는 이들 기관은 각각 설치 및 운영 조례에 따라 운영된다. 각 조례에서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제주의 문화예술 활성화, 주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 및 공연 활동 지원 등을 운영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관람료’ 부분에서 이 목적은 더욱 분명해진다. ‘도지사는 자체 기획 행사의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근거로 무료관람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관람료를 징수하게 되면, 10% 범위에서 무료관람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50% 감면 대상과 함께 제주문화사랑회원에게도 감면 혜택을 부여한다.

‘무료관람이면 무조건 좋은 게 아닌가’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도민의 문화예술 향유와 ‘무료관람’의 연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많다.

무료관람은 좋은 일처럼 보인다. 문화향유 기회 확대라는 문구 자체가 설득력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금으로 지원되는 무료에 대해 무료로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지, 혹은 다른 대안은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기획 행사 등에 대해 무료관람을 시행한 것은 문화예술 활동을 접하기 어려운 주민들의 문화향유권을 확대하기 위해 시행한 것으로 역사가 깊다. 문제는 현재도 그러한가다.

무료공연의 예매 상황은 거의 매진이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보면 빈자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취소하거나 ‘노쇼’를 해도 페널티가 없다. 이것 또한 문제다.

문화향유권을 확대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지역주민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삶의 질 자체가 동반 상승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야 하고, 향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공간도 필요하다. 삶의 전반적인 여건 상승이 가장 적절한 문화향유권 확대다. 그래서 더욱 문화예술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제주에서 이미 무대예술의 질은 향상됐고, 이를 보는 관람객의 수준도 높아졌다. 그렇다면 관람객이 적절한 요금을 지불하며 찾아갈 수 있도록 예술분야의 다양화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징수할 수 있다’는 조례에 기대어 도민 누구에게나 무분별하게 무료로 이뤄지는 예술은 예술을 들여다보는 관람객 입장에서도, 실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문화예술가에게도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다. 티켓 파워는 예술가라면 당연히 바라는 일이고 예술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료관람을 늘린다고 해서, 무엇보다 무료라고 해서 공연을 보러가는 시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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