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어머니의 장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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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제주장수복지연구원장/ 논설위원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1923년 3월 22일에 태어난 막내딸의 이름을, 외할아버지는 ‘성춘(成春)’이라 지었다. ‘인생을 봄처럼 꽃피워라’는 뜻이었을까. 그리고 당신은 1928년 정월 초닷새에 함경환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6살 때였다.

함경환은 1918년부터 제주-시모노세키-오사카를 48시간에 걸쳐서 운항하던 여객선이다. 제주시 산지항에 정박했다가 조천·성산포·서귀포·중문·모슬포·한림·애월 포구 등을 돌면서 승객을 태웠다. 500t급의 배를 접안시킬 시설이 없어서 중문 면에서는 자장코지 몰레바당(지금의 주상절리 동쪽)에 정박했다. 그날도 큰갯물(대포) 포구에서 지역주민 35명을 태운 종선(풍선)이 바람에 힘입어서 모선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많은 승객을 태운 배가 뒤뚱거리면서 간신히 함경환에 닿는 순간, 갑자기 돌풍이 몰아쳤다. 바다는 아수라로 변했고, 풍선은 바닷속으로 엎어졌다. 다행히 40대의 건장한 할아버지는 사력을 다해서 배 위로 올랐다.

그런데, 아기를 업고 허우적거리는 동녘집 아지망이, “삼춘, 살려줍서, 우리 아기 받아줍서”라며 비명을 질렀다. 할아버지는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고, 파도는 기다렸다 듯이 허연 아가리로 세 사람을 삼켰다. 대포마을 설촌 이래 최고의 비극이었다. 이 사고로 32명이 사망했고, 한 집 건너 또 한 집 꼴로 장례가 치러졌다. 시체도 없이 초상을 치르게 된 할머니는 식음을 전폐했다. ‘어떤 사람은 복도 많아서, 시신을 두고 영장을 하는고?’라는 통곡이 온 집안을 울렸다. 배가 고픈 8살짜리 오라방은 누이를 데리고 이웃집 초상집에 가서 밥을 얻어 먹였다. “일본 강, 돈 하영 벌엉, 우리 성춘이 꽃신 상 오마, 이!”라던 아버지의 약속은 지금쯤 어느 하늘을 맴돌고 있을까.

그 막내딸이, 다음 주가 되면 백세가 된다. 사람들이 ‘장수의 비결’을 묻는다. 어떤 TV 프로그램에서는 ‘특종’이라며 찾아오기도 하였다. 글쎄,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우리 어머니의 백세는 불로초로 유명한 이 ‘장수의 섬, 제주도에 태어난 덕분’이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의하면, 제주도는 2022년 7월 기준 65세 이상 노인인구 중 85세 이상 초고령 인구 비율 12.56%다. 소위 오래 사는 정도인 ‘장수도’가 17개 시·도 중 4번째를 차지한다. 제주도에 사는 것만으로도 장수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서귀포시는 2021년도 12월 말 기준, 노인 인구가 20.1%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65세 이상이 전체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가 된다.

2022년 12월 말 기준, 전국적으로 100세 이상 인구는 6472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12명 꼴이다. 이 수치를 공식적으로 집계하기 시작한 1990년의 459명보다 약 14배가 증가했다. 제주도는 231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34명이 백 살을 넘기고 있다. 남자는 9명, 여자는 222명, 여성 비율이 96%다. 할머니들이 삼다도의 ‘여다’를 이어가시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장수비결도 ‘제주도 여자’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노는 것도 혼이 싯주(한계가 있지)’, ‘먹어지민 오몽해사주(일을 해야지)’라고 하시면서, 오늘도 백세 노인이 마당에 나가서 잡초를 뽑으신다. 따사로운 봄볕이 아롱다롱 어머니를 감싸안는다. 저 부지런함이 막내딸에게 주고 가신 외할아버지, 김광용님의 선물이 아닐까. 꽃신 대신 안겨주신 삶의 기질, 바로 개척정신 말이다. 초장수인 연구에 의하면 수명은 유전자 25%, 생활방식 75%로 결정된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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