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들불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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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예전 제주에선 밭을 갈기 위해 집집마다 두세 마리의 말 또는 소를 길렀다. 농번기가 끝나면 오름 등 중산간 들녘에 방목해 키웠고, 추위가 올 즈음에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한데 마소를 제대로 사육하기 위해선 양질의 목초가 필요했다.

제주선인들은 해서 새봄이 찾아올 무렵 중산간 방목지에 마을별로 불을 놓았다. 진드기 등 각종 병해충을 없애 가축에게 먹이기 좋은 풀을 얻기 위함이었다. 불에 탄 재는 천연비료 역할을 했다. 이렇게 놓는 불을 제주어로 ‘방애불(들불)’이라 했다.

▲방애불 놓기는 마소를 방목하기 전 해마다 되풀이했던 제주의 중요한 연중행사의 하나였다. 60~70년전까지만 해도 이른 봄만 되면 한라산 기슭 여기저기서 연기가 솟아 올랐다. 날이 저물면 불길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커다란 꽃무늬가 밤 하늘을 수놓은 듯 일대 장관을 연출했다.

허나 1966년 산불 위험과 지력(地力) 약화 등을 이유로 금지되더니, 1970년대 들어 그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 그러던 게 1997년 고(故) 신철주 북제주군수에 의해 부활됐다. 양축농민의 민원 해결과 비수기 관광상품화를 위해 제주들불축제가 시작된 게다.

▲들불축제는 제1회 개최 당시 1만3000명이 찾았던 소규모 축제로 출발했다. 초기엔 애월읍 어음, 구좌읍 덕천 등 일정한 장소 없이 이곳저곳 옮겨 다녔다. 이후 2000년 제4회부터 애월읍 새별오름 일원에서 고정적으로 열게 됐다. 정월대보름에 맞췄던 축제 시기도 2013년부터 경칩(驚蟄)을 맞는 주말로 변경됐다.

그간 들불축제는 제주 최고이자 국내를 대표하는 문화관광축제로 발돋음했다. ‘대한민국 축제콘텐츠 대상’ 5년 연속 수상이 이를 말해준다. 축제 기간 방문객은 30만~40만명에 이르며, 지역경제 파급 효과도 수백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됐던 제25회 제주특불축제가 ‘들불’없는 반쪽짜리 축제로 막을 내렸다, 전국적으로 산불 위험이 증가함에 따라 행사의 백미인 오름 불놓기·딜집 태우기 등이 전면 취소됐기 때문이다. ‘팥 없는 찐빵’이 됐다는 비아냥을 받은 이유다.

이와 맞물려 그 필요성에 대한 존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탄소 배출과 식생 파괴 등을 들어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는 게다. 축제 개최 26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선 셈이다. 그야말로 위기의 계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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