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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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대표·산림치유지도사/ 논설위원

제주에는 용암동굴이 많다. 수십만 전의 화산 활동 흔적이다. 엄청난 양의 액체 현무암이 흘러간 길이다. 현무암 작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용암동굴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개방된 용암동굴을 찾았다. 동굴에는 기기괴괴한 장식품들로 가득했다. 동굴 천장이나 벽면, 바닥 가릴 것 없이 갖가지 문양을 새겨놓았다. 미세하고 섬세하다. 조밀하고 아기자기하다. 거기에 크고 둔탁한 것도 있다. 참으로 신기하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기에 더욱 그렇다.

이를 동굴 생성물이라 한다. 대표적인 것은 용암종유다. 천장이나 벽면에 늘어져 있는 생성물이다. 빨대처럼 속이 비어있는 종유관도 있다. 꼬불꼬불 한 모양의 곡석도 있다. 방울처럼 매달려 있는 석순도 있다. 공기가 들어있는 것처럼 부풀어 오른 기포도 있다.

이뿐만 아니다. 용암이 흐르다 남긴 홈이나 긁힌 줄무늬 자국도 있다. 멍석을 벽면 한쪽 구석으로 말아놓은 것 같은 두루마리 모양도 있다. 물을 가둬놓는 제방 모양,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모양, 벽과 벽을 잇는 다리 모양, 물이 흘렀던 도랑 모양, 건축물 기둥 같은 거대한 석주 모양, 거북처럼 생긴 표석도 있다. 동굴 내부를 장식하는 걸작품들이다.

그러면서도 동굴은 제한된 지하 공간이다. 햇볕이 비치지 않아 어두컴컴하다. 바위틈으로 스며드는 물로 내부는 늘 축축하다. 물방울이 곳곳에서 떨어진다. 그렇다고 물기를 흡수할 수 있는 열기도 별로 없다. 습도는 매우 높고 온도는 낮은 수준에서 거의 일정하다.

만장굴의 내부 온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겨울철에는 5도 정도, 여름철에는 12도 정도다. 실제 지난 3일 기록된 내부 온도는 5.6도였다. 습도는 99.9%다. 협재굴과 쌍용굴의 온도는 만장굴보다 높은 편이다. 길이가 짧고 관람객이 있어서다. 겨울철 10도, 여름철 18도 내외다. 습도는 겨울철 80~90%, 여름철 75~85%다.

이처럼 동굴 내부환경은 동굴 밖 외부환경과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외부에서처럼 대형 동물이나 초식 동물이 살 수 없다. 햇볕이 차단돼 녹색 식물 또한 생존할 수 없다. 덩달아 산소량도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일부 동물들만 서식한다.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박쥐나 동굴 환경에 맞게 진화한 거미류 등이다.

이들 동물의 특징을 보면 모든 기관이 정상적이지 않다. 어두운 환경 때문에 눈은 퇴화한다. 대신 더듬이 촉수가 발달한다. 몸의 색깔은 하얗거나 투명 무색이다. 서식 환경의 제한으로 몸집은 작다. 생식기관마저 떨어진다. 산소호흡보다 피부호흡을 한다. 소화기관도 발달하지 않아 물질대사가 느리다.

그래서 동굴의 세상은 기묘하면서 불완전하다. 조명 비친 환상 속의 세상 같다. 우리도 어쩌면 동굴과 같은 일정한 사고의 틀에 갇혀 사는지 모른다. 오히려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을 수도 있다. 태양이 비치는 동굴 밖의 풍요로운 세상이 있음에도 말이다.

플라톤은 이를 ‘동굴의 비유’로 설명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동굴 속 불완전한 그림자 세상에 갇혀 실제 세상처럼 착각하며 산다. 피상적 현상에 익숙해지고 그 틀에 만족해버린다. 그래서 플라톤은 합리적 이성을 통해 빈약한 사고의 수준을 폭넓은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지금 나는 동굴 속 조명의 그림자처럼 어떤 공간에 갇혀 가상의 형상에 빠진 것은 아닌지 잠시나마 동굴 속을 연상하며 생각치유를 한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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