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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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웃음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가을운동회 날이었던 것 같다. ‘물건찾기’가 진행됐는데, 내가 손에 집은 카드가 ‘고무신’이었다. 그땐 남녀 어른들이 대부분 신던 신발이다. “고무신” 하고 외쳤더니, 빙 둘러섰던 어른 한 분이 검정 고무신 한쪽을 벗어 앞으로 던져주는 게 아닌가. 나는 그것을 들고 젖 먹은 기운을 다해 뛰어 2등을 했다. ‘賞’ 자 붉은 도장이 찍혀진 학습장 두 권을 받았다.

얼마나 받고 싶던 상인가. 달리기를 못하던 나는 운동회 때마다 3등 안에 들지 못해 상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하도 기뻐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부끄러워 웃지 못해 참았다가 운동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몸을 흔들며 소리 내 웃었다. 그때 일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기억 속에 각인된 첫 번째의 웃음이다.

기쁠 때, 신날 때, 즐거울 때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이 웃음이다. 얼굴에 갑자기 파장이 골을 파며 일렁인다. 입꼬리가 쑥 올라가고 눈매가 가늘어지며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사람의 얼굴 가운데 웃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인상이 험악한 사람도 웃음 지을 땐 상당히 부드러워 보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칭찬을 듣고 소리 없이 얼굴에 번지던 웃음의 흔적이 걔들 50줄의 나이에도 남아있다. 웃음은 기억 속에 짙게 채색돼 쉽사리 빛바래지 않는 감정의 풍경화인가. 삶의 굽이 굽이에 서려 있다가 새록새록 되새기면 즐겁다.

웃음이라고 다 웃음이 아니다. 기쁨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게 웃음이지만 슬플 때, 괴로울 때, 어처구니없을 때, 기막힐 때, 화날 때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수도 있다. 남은 잔뜩 화나서 웃는데, 웃어넘기려 하는 것은 되려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약을 올리는 것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율해야 한다. 민감한 부분을 비켜 가는 게 상식이다.

웃음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소리 없이 빙긋이 웃는 미소, 입을 크게 벌려가며 떠들썩하게 웃는 홍소(哄笑), 크게 웃는 대소(大笑), 갑자기 세차게 터져 나오는 폭소, 쌀쌀맞게 비웃는 냉소(冷笑), 씁쓸히 머금는 고소(苦笑)….

미소는 따뜻하고 잔잔해 우애롭고 평화롭다. 홍조는 장내를 떠나가게 하는 호인의 기개이나 평시엔 분위기를 깨니 예의롭지 않다. 대소도 도가 지나치니 웃는데도 웃음의 효과는 반감돼 결국 과유불급이다. 남을 비웃는 냉소엔 상대를 받아들이려는 따뜻한 사랑과 긍정과 배려의 마음이 결핍하다. 냉소주의는 화합이 어려워 가로막아선 벽을 허물기 힘들다. 고소는 세상을 비관하는 자의 쓴웃음이다. 기뻐서 절로 나오는 게 웃음이니 밝은 마음으로 개선해야 할 웃음이다.

우리 사람이란 사회라는 관계망 속에 살아야 하므로 오불관언(吾不關焉),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이왕이면 웃음도 상대의 마음에 좋은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살며시 마음 적셔오는, 어느 날 고운 님의 조용한 미소가 아니더라도 상대를 놀라거나 우울하게 하는 웃음은 삼가는 게 좋다. 너무 크게 웃으면 주변에 민폐가 될 수도 있다.

웃기 싫은데 웃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감정노동을 강제하는 것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이 부당한 대우에도 웃어야 하는 건 고통이란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한다.

어머니는 온화한 성품에 욕 대신 조용히 웃으셨다. 당신의 그 미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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