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고 그랬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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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하늘 곁자리로 온기가 빠르게 달려든다. 햇살이 쨍했다. 화창한 날씨가 아까워 이불을 팡팡 털어 내 넌 후 가까운 공원으로 나가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햇살 안에서 수목들도 덩달아 바빴다. 따뜻한 기운은 곰의말채나무, 앙상한 가지마다 순을 틔우느라 분주한 가막살나무, 때죽나무, 희고 노란 꽃을 마련하여 사방팔방 웃음을 흩뿌리는 수선화 꽃잎 청초함 위로도 온통 번진다. 저쪽 산책로 건너 목련은 가지마다 흰 조명등을 달더니 이내 환하게 불을 켰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마련된 정자며 간이의자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담소 나누는 이들 모습은 봄기운에다 정겨움이 더했다. 곳곳으로 절기의 가쁜 숨소리 확인하느라 계절의 보폭도 제법 빨라진다. 잘 조성된 공원 안은 서로 계절을 당기느라 분주하다. 어느 구간, 야자수 매트를 깔아놓아 오르내리는 동안 적당한 경사도가 주는 긴장감이 좋다. 산책로 따라 걷는데 저쪽으로 반려동물을 위한 놀이터가 내려다보인다.

푸른 잔디 위를 뛰놀고 있는 개들도 온통 봄을 밟고 있다. 오래전부터 거칠고 힘든 삶이거나, 혹은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러운 듯이 비아냥거리는 말로 ’개만도 못하다‘거나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로 종종 빗대어 표현했었다. 화가 치밀어 욕을 할 때도 흔히 ‘개 xx, 개 같은 x, 개 x의 새끼’하며 개를 들이대며 악을 바락바락 쓰지 않았던가. 이젠 그 말도 함부로 쓰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순간 들었다.

유모차 같은 것에, 하마 아기를 태운 유모차인 줄 알았다. 가까이서 보니 개를 앉힌 후 끌고 다니는 개 유모차였다. 그런가 하면, 눈 맞춤은 예사고 아기 안듯이 안고 얼굴이라도 비벼댈 것처럼 서로 맞대기도 했다. 어떤 처자는 옹알이하는 아기한테 말이라도 걸듯 껴안고 ‘오고고 그랬쪄’ 하며 종알거리듯 어르는 모습도 띄었다. 익숙지 않은 행동에 보는 사람이 더 신기했다.

개들은 제각각의 생김새처럼 꾸민 모습도 다양했다. 데리고 나온 주인의 독특한 취향만큼씩 옷이며, 신발, 더러는 머리핀까지 예쁘게 치장하고 있었다. 주인의 발자국 따라 쫄랑쫄랑 쫓아 다니는 모습이 귀엽다. 저런 맛에 반려동물을 키우나 싶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개 주인들 역시 운동을 시키거나, 놀이터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행동 하나하나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본다. 오래전 아이들을 키울 때 작은 변화나 행동에도 흐뭇해하던 그 눈빛을 닮았다. 데리고 온 개 주인들도 끼리끼리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지 희희낙락 즐거운 모습들이다. 하기야 화젯거리가 비슷하면 재미는 덤이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겠다. 이 정도면 개만도 못한 삶을 사는 사람도 꽤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 한 지인이 인터넷에 떠도는 개에 대한 글 하나를 보내왔다. 개를 키우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아까 공원에서 익숙지 않은 광경을 본 탓일까. 웃긴 내용의 글이었지만 읽고 맘껏 웃지 못했다. 웃기지만 슬픈, 맞다 웃픈 이야기여서다. 아껴주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 마음도 움직이는데 하물며 개가 무슨 죄가 있으랴. 집에 와 TV를 켰다. 채널을 누르는데 개 프로가 여기도 나온다. 가족 중에 유난히 한 사람만 좋아하는 개를 상담하는 중이었다. 이어 전문가는 정서지원을 필요로 한다나 어쨌다나. 개가 상전이 되는 것 같은, 이 정도면 개 같은 세상을 원할 수도 있겠다. 개 같은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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