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와 호구사이
호의와 호구사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논설위원

호의(好意)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요즘이다. 호의(好意)는 친절한 마음씨를 이르는 말이다. 호의삼조(好意三條)란 말도 있다. 호의를 베풀 때 세 가지 조건을 지킨다면 호의를 받는 사람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호의삼조는 원조(願件), 시조(時件), 은조(隱件)를 말한다. 원조(願件)는 상대가 절실히 원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며, 시조(時件)는 도움의 타이밍(Timing)을 의미하며, 은조(隱件)는 다른 사람 모르게 은밀히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런 호의는 상호성의 원칙이 작용한다. 누구에게 호의를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된다. 우리 마음에 대단한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아주 강력하고 오랫동안 의무감이 지속하게 된다. 이를 어길 경우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것이라고 학습되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호의에 대한 무성의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래서 호의는 상대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인간관계의 질을 높이기도 하면서 사회 문화의 질을 성장시킨다.

그런데 호의의 상호성의 원칙에 어긋나게 호의와 호구 사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경우들이 있다. 호구(虎口)는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줄 착각하는 경우이다. 먼저 호의를 받은 사람이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거나 받고 있던 호의를 이유로 다른 부분까지 확대하여 부탁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한번 서류 정리를 도와주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다른 서류정리나 문서작성까지 도움을 요청하거나 떠넘기는 경우 등이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두 심리학자 조나단 프리드만과 스콧 프레이저(Jonathan Freedman & Scott Fraser)의 문간에 발 들여놓기(Foot in the door) 연구와 비슷하다. 작은 부탁에서 시작해 점점 수준을 높이며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호의는 때때로 선한 마음으로 베푼 사람을 어느덧 호구의 위치에 놓이게 하는 경우들이 있다. 특히 가족관계, 동료관계, 업무관계 등의 관계에서 실제로 호의가 지속되면 그것이 권리인줄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영미권에 이런 속담이 있다. “남의 부탁을 들어주다 보면 어느 새 너의 일이 되어 있다(Do Someone a Favour and It Becomes Your Job)”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일방적이고 무한정한 호의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호의는 상호성의 하에 이루어질 때, 인간관계를 성숙시키고 사회발전을 질적으로 성장시키지만, 호구와 같이 일방이 권리로 인식하여 교묘하게 사용한다면, 인간관계의 신뢰도는 떨어지고 사회의 도덕과 문화가 성장하는 데 가장 나쁜 요소가 된다.

2013년 상영되었던 포켓몬스터 XY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플라드리 역시 비슷한 말을 한다. “처음에는 도와주는 것에 감사하더니, 나중에는 도움을 당연시 여기며 손을 내미는 것에 역겨워, 흑화하였다”고 말이다.

이렇듯 호의를 호구로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은 결국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계기를 제공하고 만다. 사람의 마음을 교감하는 일에 상호성의 없이 일방의 권리로 인식하는 문화는 오늘날 컴팩트 사회 안에서 남을 활용한 자기구제 장치의 하나로 인식할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망하는 길이 되기에 마음을 살펴 호의를 교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호의의 근본은 사람의 근간을 이루는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을 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