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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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재릉초등학교 교장·수필가

경로당에서 봉사 활동을 하기로 한 날이다. 아침부터 준비물을 챙기려니 분주하다. 무대 화장까지는 못해도 평소보다 신경 써서 단장한다. 해금과 난타 북, 공연복도 챙겨야 하고 무대 상황을 모르니 커다란 블루투스도 챙겨야 한다. 첫 공연도 아닌데 긴장감은 매번 더한다. 공연을 보면서 즐거워하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생각하니 동작 하나, 표정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영상을 보면서 동작을 외우고 또 외운다. 오늘 공연은 인트로에서 해금을 하고 난타 북을 연주한다.

해금을 잡은 지는 10년이 넘었다. 뜻 맞는 여고 동창으로 구성된 난타 동아리가 활동한 지는 일 년도 채 안 되지만, 취미로 배운 것이 이제는 남을 위해 나의 배움을 나누고 있다. 해금과 어우러진 난타 공연은 예술적 수준이 놓은 전문가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나의 앎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데 작은 기쁨이자 보람이다. 또한, 서로 다른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힘이 봉사 활동 속에 있기에 바쁜 일상에도 시간을 쪼개어 연습하고 호흡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완성도도 높아지고 공연을 보는 관객도 즐겁고 공연하는 우리도 즐겁다.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작은 경로당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해금을 서두로 난타 공연을 하자 마스크를 벗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흥에 겨워 돌고래 손뼉을 친다. 앙코르가 터졌으나 배움이 짧은 우리는 2곡 공연이 전부이기에 아쉽지만, 무대를 나왔다. 이어 음악 반주기에서는 신나는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오늘의 가수 할아버지가 노래를 부르자 가면을 쓴 행사 진행요원들이 능숙하게 흥분위기를 띄운다. 경로당은 오랜만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언제부터인지 ‘재능기부’라는 말이 흔해졌다. 사실 부끄럽지만, 나의 해금 실력을 과대평가하여 청을 받아본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양할 수 없어 응하기도 했다. 내 실력으로 따지자면 작은 재능기부인 셈이다. 누군가가 나의 해금 연주로 기쁨을 얻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좋은 일일 텐데, 어느 순간부터 대가를 바라는 나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를 알리기에 급급해서 어떤 곳이든, 어떤 행사든 섭외가 들어오면 달려갔었다. 전문 예술인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나의 공연 스팩을 쌓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생각해 보니 이런 나의 행동은 옮았다. 한 사람의 재능을 가꾸고 키우려면 보통사람과 달리 수많은 시간을 칼을 깎는 노력으로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정진했을 것이다. 대중은 가치가 매겨지지 않은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유명 연예인 중에 가끔 ‘기부 천사’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재능이 기부되려면 먼저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고 그 사람이 그 대가를 기부하는 것이 ‘기부 천사’의 품격이 아닐까. 그래야 나눔의 선한 기부가 지속된다. 기부는 행복이다. 자원봉사자들의 내어주는 능력과 시간을 너무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좋은 일이기에 희생을 떠안는 것이 아니라 참여 자체가 즐거운 일이 될 수 있게 서로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봉사 활동을 위해 휴일 아침부터 나선길, 인근 커피숍에서 차를 마셨다. 후 평가를 하기 위해서다. 출연료가 없어 미안하다며 공연을 주선한 친구가 주문을 받는다. 뭔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모인 우리, 작은 행복이 따뜻한 찻잔에서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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