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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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숙 / 수필가

한 무리의 여인들이 대형 거울 앞에 서 있다. 거울을 마주하고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춤을 춘다. ‘하나둘 셋 넷…, 둘둘 셋 넷…’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와는 딴판으로 동작이 각각이다. 장기자랑이라면 타고난 재능을 뽐내는 자리일 텐데, 거리가 멀어도 한참은 멀어 보인다.

춤은 ‘가락에 맞추거나 절로 흥에 겨워 팔다리나 몸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동작’이라 사전에 나와 있다. 현란한 몸동작과 힘 있는 노래로 무대를 꾸미는 아이돌의 무대를 볼 때마다 저게 가능한 일인가 의문과 함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이돌로 데뷔하기 전 연습생 시절이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남들이 직업에 매진하는 시간만큼 춤과 노래에 전력을 다한 결과물이 아닐까.

오래전,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출연한 영화 ‘지젤’을 보았다. 내가 직접 춤을 추지 않아도 대사가 없어도, 춤 하나만으로도 무대에 오른 무용수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고학년은 특활시간이 있었다. 4학년에 올라가면서 선배들의 조언도 들으며 어느 반으로 갈까 잠시 기웃거리는 동안, 내 이름이 무용반에 올라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담임선생님의 간택이었다.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특활시간이 되면 무용반 아이들을 둥그렇게 앉혀놓고 시범을 보였다. 그때마다 나는 선생님과 파트너가 되어 손을 잡고 동작에 맞춰 춤을 추었다.

본디 타고난 재능이 없기도 하거니와 누구 앞에서 춤을 춰 본 경험이 없던 터라 자꾸만 동작이 엇나갔다. 선생님의 발이 왼쪽으로 가면 내 발은 오른쪽으로, 선생님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작을 하면 내 몸은 뒤로 물러났다. 아이들 앞에서 얼굴이 홍당무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그러거나 말거나 끈질기게 내 손을 잡고 한 학기 동안 나와 한 팀이 되어 춤을 추었다. 그날 밤엔 외줄 타기를 하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일찌감치 내가 춤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이 기억을 소환해 내야 하는 일이 현실에서 생겼다. 문학회 송년의 밤에 반별 장기자랑을 해야 했다. 주위의 부추김에 잠시 뜸을 들이던 사이에 초등학교 특활시간처럼 내가 앞으로 내몰렸다. 모두가 턱을 괴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상을 보며 동작을 따라가자니 눈이 먼저인지, 노래가 먼저인지 헷갈렸다. 분명 눈과 귀는 내 몸의 지체임에도 호응이 안 되었다. 빠른 박자에 맞춰 익힐 틈도 없이 다음 동작으로 이어진다.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동작이다. 손과 발의 움직임을 글로 써 보기로 했다. 동작 1 동작 2…, 동작을 기억하여 반복해서 연습하고 음악에 맞춰 연습했다. 낮에는 손님이 없는 매장에서, 잠자리에 들 때와 아침에 눈을 뜨면 동작을 떠올려 보았다.

몸치의 공연 소식은 남편에게 은근히 나를 놀릴 먹잇감이 되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춤을 추기 전에 자기 앞에서 떨지 말고 춰 보라고 했다. 음악을 틀어놨지만 잠시 긴장했는지 동작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후 동작은 기억해 냈지만, 노래는 저만치 흘러가 버리고 손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이의 비난이 래퍼처럼 쏟아졌다.

“아냐 아냐, 손이 제대로 올라가야지. 동작을 크게 크게. 허허— 이래 가지고 누구 앞에 선다고…”

“내 나이가 몇인데…! 젠장.”

춤은 몸을 이용한 표현 매체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도 음악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든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춤을 춘다. 더러는 바람이 매개되어 낙엽이 뒹굴고 파도가 일렁인다. 널어놓은 빨래와 내리는 눈 삼라만상이 춤을 춘다. 우리 민족은 유독 흥이 많은 민족이지 않은가. 음주·가무에 능한 DNA를 나도 물려받았을 터인데. 이참에, 춤이나 배워볼까나.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아모르파티…!”

온종일 머릿속에 노래와 춤이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틀리면 어떻고 남들이 좀 웃으면 어때, 그냥 막 춰 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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