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어울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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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초봄 날씨가 더없이 포근하다. 백록담 계곡에 쌓인 잔설이 한층 가깝게 보인다. 하늘과 수평선은 서로 품어 경계가 모호하다. 바다를 옆에 끼고 해안도로를 느긋하게 달린다. 낮게 뒤척이는 바닷물에 풍덩 몸을 담그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새삼 제주인으로 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느끼는 순간이다.

차를 세워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는 것도 나름 풍경을 즐기는 방법이다. 그때마다 인공시설물이 눈엣가시처럼 거슬린다. 해안도로를 이용하는 보행자나 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시설물이다. 해안 가까이 넓힌 도로 가장자리에 콘크리트 월파 방호벽이며, 듬성듬성 세워 놓은 귀한 현무암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왕이면 그 지역의 특성을 살린 이야깃거리를 입혔더라면, 청정 바다와 잘 어울릴 텐데. 콘크리트 시설물은 한번 시행하면, 원래 모습으로 쉽게 복구되거나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 아쉬움이 크다.

더구나 해녀들의 작업 편리를 위해 바다 쪽으로 깊숙이 낸, 덕지덕지 쏟아부은 콘크리트 길은 여간 흉하지 않다. 썰물로 드러난 모습을 보면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제주의 자랑이요, 보물인 현무암 위에 허연 버짐처럼 썰물에 드러난 시멘트라니. 푸른 바다와 물기 머금어 더욱 선명한 검은 현무암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겉돈다.

태초에 자연은 주변과 서로 어울리게 형성돼 공존한다. 순수한 지역에 인위적인 것을 설치하려면, 적어도 그와 흡사한 환경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본래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데 어긋나기 시작하면, 금방 자연 파괴로 이어진다. 시나브로 바닷가 곳곳이 이런 모습으로 훼손되고 있다.

얼마 전이다. 해안가 도로 방호벽을 무지개 색깔로 칠한 도두동 해안도로를 지나게 됐다. 빨주노초파남보로 색을 입힌 모습이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해안을 따라 설치된 방호벽이 무지갯빛으로 단장해 주변과 잘 어울렸다. 무지개는 누구나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신기루다. 탑동 월파 방호벽에 양각으로 새겨진 갖가지 해양 생물도 볼거리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부모와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묻고 답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제주의 독특한 풍경은 검은 현무암에 어우러진 비췻빛 바다다. 봄에 해안가에 제멋대로 자라 핀 노란 유채꽃의 유희는 환상적이다. 하늘이 맑은 봄날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제주 절반이 시야에 안겨 일렁이는 노란 풍경은, 탄성이 터질 만큼 가히 몽환적이다. 봄이면 이 풍경에 매료되어 여행을 온다는 이들도 있다.

나는 비 온 후, 맑게 갠 여름 풍경을 가장 사랑한다. 물기 흠뻑 머금어 숨어있던 본래의 속살을 과감히 드러낸 듯 해맑게 깨어난다. 비 그친 후 산과 오름, 들이 새 옷을 갈아입은 것같이 오묘한 색으로 변신을 한다. 초록색이었다가 연두색으로, 잔뜩 독이 올라 짙푸른 숲이 되곤 한다. 이른 아침 눅눅한 안개에 잠긴 다소곳한 숲은 신비스럽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마치 오케스트라의 화음처럼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숲을 보라.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다.

제주는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일이 허다하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은 곧 자연을 지키는 것이다. 시행에 앞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제주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서로 어울리는 섬으로 지켜지길 바라며 차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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