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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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수필가·시인

K 선배를 만났다. 마음이 선한 그를 선후배 모두가 좋아한다. 법인 창고 마당이 비좁아 그 선배의 자투리땅을 빌려 사용했던 인연으로 친했다. 막걸리 사발을 비우며 근황을 물었다.

“밭 하나 있던 건 10년 전에 팔았어, 허릴 다쳐서 예전처럼 일도 못 하고 병원 신세만 지는 꼴이야. 어차피 농사를 못 지을 거면 밭을 가지고 있어 봐야 별수 없고,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요양비를 감당하지도 못하겠고, 그 돈도 이젠 동이 나 버렸어, 그래서 집도 내놓으려 해.”

남편과 일찍 사별한 그의 어머니는 다섯이나 되는 자식을 밭일하고 품앗이하며 근근이 키워냈다. 다행히 집 하나와 밭 하나는 있었다. 하지만 넉넉지 못하여 다섯 자녀 모두 초등학교 아니면 중학교밖에 못 보낸 걸 늘 한탄했다.

장남인 그는 일찍이 농사일과 막노동하면서 동생들 돌보며 어머니 뒤를 이었다. 몇 년 전에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다. 어려운 생활고 속에서도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을 착실하게 부었다. 스스로 불입금을 높여 한 달 12만 원씩 부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대부분 몇만 원이 고작인데, 그의 처지로는 거액이다.

국민연금 받을 시점이 되자 한 달에 70여만 원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어머니의 요양비 부담액이 50만 원 가까우니 요양원으로 송금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지만 절약하며 사니 그럭저럭 굶지는 않고 지냈다.

이혼한 아내가 소송을 걸어왔다. 국민연금 반을 내어놓으라는. 그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 토막 나버린 국민연금으론 어머니 요양비도 감당할 수 없기에 집을 팔려고 내어놓게 되었다.

이리저리 꼬이면서 더욱 궁핍해진 100세 시대의 선봉에선 그, 동생들과 둘 있는 아들도 하나같이 이혼했거나 형편이 어렵다며 한숨이다.

사업을 할 때 그의 여동생이 생산직 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착하고 순박했다. 그 여동생마저도 이혼하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며 산다. 그의 근심 많은 삶이 남의 일 같지 않다. 하지만 그는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말한다.

“집이 팔리고 나면 자네 집 옆에 자투리 내 땅이 조금 있잖은가, 그곳에 컨테이너 하나 들여놓고 살려네, 전기랑 수도랑 연결해서 쓰게 해줘.”

착한 만큼 복을 받으며 살면 좋으련만, 열심히 노력해도 주변 환경과 운명이 막아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가슴 쓰리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복지 사회를 외치는 지금 우리의 복지는 어디까지 왔나. 근본적인 대책이 서 있는가. 요양시설은 돈을 주고도 못 들어간다는 말이 나올 만큼 포화 상태라고 한다.

세계의 복지도 마찬가지다. 노령화로 대부분의 나라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본만 해도 노인천국이라는 말은 옛말이고 70대까지 근로는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노골적으로 노인을 골칫덩이라고 말한다.

많은 나라가 노인 복지로 국가 부도 직전이란 말도 있다. 노인들은 내 건강과 경제력이 당장 급한 발등의 불이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도 덜할 수밖에 없다. 생산에 참여할 수 없고 소비만 하니 국가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는 거다. 나라마다 노인 천국이 될 거라며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나라도 몇 년 후면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다. 그것보다 더한 문제는 세계에서 꼴찌인 출산율이다. 누가 노인들을 돌볼 것이며 이 나라를 지탱할 것인가.

마음을 묵직하게 누르는 그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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