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지금 너무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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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는 지난달 31일 제주4·3평화기념관서 제주4·3 제75주년 기념 스물두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

한때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지금 너무나 그립습니다.”

제주4·3연구소는 지난달 31일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4·3, 재심과 연좌제 창창한 꿈마저 빼앗겨수다라는 주제로 제주4·3 75주년 기념 스물두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을 개최했다.

연좌제로 꿈을 접고 삶의 방향을 바꾼 양성홍씨(76)는 이날 4·3 당시 부모님이 본 피해 등 아픈 기억을 끄집어 냈다.

양씨는 현재 4·3유족회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양씨의 아버지 양두량씨(당시 27)4·3 당시 도내 최대 수용소였던 제주주정공장에 수용됐다가 징역 7년을 선고받아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후 행방불명됐다.

양씨의 어머니는 남편이 도피하는 동안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양씨는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아버지의 존재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양씨는 고등학교 시절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동네 선배로부터 연좌제때문에 힘들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꿈을 접어야 했다. 공공기관에서 잠시 근무했지만 신원조회에서 뭐가 나왔다. 그만둬야겠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양씨는 앞길이 막혔다는 생각에 한때 방황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더욱 열심히 살아왔다고 한다.

양씨는 이후 1999년 미국 비밀 보관소에 보관돼 있던 문서를 토대로 대전 골령골 대량 학살 사건이 다뤄진 기사를 보고 아버지의 흔적을 찾게 됐다고 한다.

양씨의 아버지는 지난해 8월 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양 씨는 한때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지만 당시 아버지의 나이는 고작 27살이었다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처자식을 두고 그 길을 떠나면서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생각해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19496월 만삭인 어머니가 주정공장에 끌려가 있던 중 주정공장에서 태어난 강상옥씨(74)의 기구한 사연도 소개됐다.

마지막으로 제주농업학교 항일운동을 이끈 오화국씨의 자녀인 오희숙(86)·오계숙(79)·오기숙(77)씨도 아픈 과거를 털어놨다.

아버지인 오화국씨는 항일운동으로 형을 살고 해방 후 19473·1절 집회로 체포돼 목포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가석방돼 고향에 돌아왔지만 주변 사람들이 잡혀갔다는 소문이 돌자 부산으로 몸을 피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터지자 일본으로 떠났다. 남아있는 가족들은 모진 고문과 연좌제의 피해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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