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조차 슬픔을 초월한 제주4·3 그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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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오페라 '순이삼촌' 7·8일 제주아트센터서 펼쳐져

연출·출연진 교체하고 첫선...230여 명 무대 채워
4·3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이 7일과 8일 제주아트센터 무대에서 펼쳐졌다.

현기영 소설가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프롤로그와 김수열 시인의 목소리로 전하는 에필로그 사이.

제주4·3 그날의 기억이 소리 없는 눈물로 피를 토하듯 펼쳐졌다.

4·3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이 7일과 8일 제주아트센터 무대에서 펼쳐졌다.

제주시와 제주4·3평화재단이 주최한 오페라 ‘순이삼촌’은 2020년 11월 첫 무대 이후 지난해 9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려졌다. 이후 연출과 출연진을 대폭 교체하고 처음으로 4월, 4·3 주간에 제주에서 첫 무대를 꾸렸다. 오는 8월 부산문화회관에서 공연도 예정됐다.

무대는 강요배 화가, 강정효 사진가의 작품에서부터 도립제주교향악단과 제주합창단, 극단 가람, 제주4·3평화합창단, 밀물현대무용단, 순이삼촌오페라합창단 등 제작진과 출연진을 포함해 230여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1979년 북촌리.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상수는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8년 만에 고향 북촌리에 돌아온다. 친척 어른들에게 듣게 되는 순이삼촌의 죽음. 순이삼촌이 삶의 마지막 장소로 택한 ‘옴팡밭’은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를 생각하며, ‘북촌에서의 그날’을 외면하며 살아온 자신을 돌아본다.

1948년 음력 섣달 열아흐렛날. 추운 겨울 북촌국민학교로 모인 마을 사람들은 군인들의 무서운 기세에 눌려 두려움에 떨고 있다. 산속 동굴로 피신했던 순이삼촌은 마을에 남겨둔 남매가 눈에 밟혀 마을로 내려왔다가 운동장으로 집결하게 된다. 군경가족과 대동청년단 가족을 제외한 마을 사람들은 일주도로면 네 개의 밭으로 나뉘어 학살당하고, 군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기 시작한다. 한날한시에 떼죽음을 당한 마을사람이 300여명. 순이삼촌은 그곳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자신의 아이 둘을 잃는다.

총알과 뼛조각만 나오는 옴팡밭 한쪽에 아이들의 무덤을 만들고, 고구마를 키우며 세월을 살아간다.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없는 세월이었기에 ‘피로 물든 땅에서 키운 고구마는 먹지 못하겠다’는 마을 사람들의 얘기는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1979년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북촌의 옴팡밭에 밤색 두루마기에 토끼털 목도리를 한 정갈한 차림의 순이삼촌이 섰다. 긴 세월 자식을 잃고 유령처럼 살아온 삶을 내려놓는다.

죽음조차 슬픔을 초월했고, 눈물은 죄가 되던 시절이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실체적 진실 앞에서 무대는 ‘그날의 기억’을 얘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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