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이 아니라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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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아침부터 얼굴을 붉혔다. 외부 기관에 제출해야 할 자료가 있어 며칠 전부터 담당 직원에게 자료준비를 지시했는데, 엉뚱한 자료를 내미는 게 아닌가. 제출 마감 시간은 촉박한데 수습할 방도는 떠오르지 않아 초조해진 마음에 급기야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직원은 분명 내가 얘기한 대로 준비했다며 억울해 하고, 나는 언제 그렇게 얘기했냐며 역시 억울해 했다. 난데없이 아침부터 억울해진 두 사람 때문에 사무실 분위기마저 억울해지고 말았다.

땅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릿속으로는 직원에게 지시한 내용을 무한반복 재생해 보지만 여전히 나는 결백할 뿐이다. 그 직원 역시 그러할 테니 이번 사건의 전말은 압수수색이라도 하지 않는 한 제대로 밝혀지기 어려울 듯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쓰리는 것은 한두 해 같이 일한 사이도 아니고 이제는 ‘척하면 척’하는 사이라고 생각했던 직원과 호흡이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의 후유증은 오래 갈 것 같다. 조속한 관계 회복을 위해 내 자존심을 과감하게 내던지는 대승적 결단을 내려야할지도 모르겠다. 그 직원이 물컵의 반을 채워 줄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사실 나 역시 부하 직원의 입장에서 이런 경우를 겪었던 경험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씩씩거리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상사는 업무지시 끝에 반드시 내가 지시사항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얘기해 보라고 했다. 당시에는 군대에서나 하는 ‘복명복창’을 요구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지만, 직장에서의 위치가 바뀐 지금 입장에서는 그 선배가 참 현명하지 않았나 싶다. 서 있는 위치가 바뀌면 다르게 보이는 풍경처럼 말이다.

‘질문’ 역시 마찬가지다. ‘지시’를 분명하게 해야 그에 따른 ‘이행’에도 차질이 없는 것처럼 제대로 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올바른 질문을 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대화형 인공지능 시스템 ‘챗 지피티(Chat GPT)’가 등장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 전문가는 앞으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양보다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인정받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뛰어넘어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도 ‘질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할 수도 있고, 그럴듯하지만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자칫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을 품은 인공지능. 그것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기술이 다름 아닌 올바른 ‘질문’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처럼 기술은 진화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날이 갈수록 질문은 없고 자기주장만 난무하는가 하면, 그나마 질문에 대해 내놓는 답은 공격적이고 비인격적이다. 과정은 생략하고 결론만 강요하며,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념과 사상, 정파를 따져든다. 질문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설득시켜야 하는 논의의 장은 고성과 욕설, 비난과 저주가 지배하는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여서 늘 안타깝다.

아인슈타인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1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핵심이 되는 질문을 찾는데 55분을 쓰겠다. 올바른 질문을 찾으면 정답을 찾는 데 5분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좋은 질문에는 반드시 문제 해결의 열쇠가 숨어 있다. 갈등의 실타래를 주장이 아니라 질문으로 풀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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