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본 최근의 제주4·3사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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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주, C&C 국토개발행정연구소 소장/ 논설위원

최근 태영호 국회의원의 제주4·3 사건이 김일성 지시로 촉발했다는 거듭된 주장이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 주장의 요지는 ‘5월 10일 단선(단독선거)을 무조건 파탄시키라’는 소련 공산당의 지시와, 이 지시를 받아 남로당 박헌영에게 전달했고, 제주도뿐 아니라 남조선 전역에서 5·10 단독 선거를 파탄시키기 위한 남로당의 활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 맥락에서 남로당 제주도당도 그런 결정을 내린 거고, 이런 역사의 진실은 부인하면 안 된다”고 했다. 4월 4일자 ‘미디어 오늘’ 보도에 따르면, 한 국회의원은 “북한이 본인들의 주체 사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민들에게 한 이야기를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가 나서서 조사에서 확인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가르쳐야 된다”고 촉구했다. 이에 국무총리는 “…일반적으로 확실하게 좀 정부로서도 노력을 더 좀 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는 “제주4·3사건은 구체적인 근거 제시도 없이, 소련이나 북한, 또는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에 의해 제주도를 비롯해 한반도 전체를 적화시키기 위해서 공산도배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규정되어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북한군 유입설’ 등도 모두 허위임이 밝혀졌다”고 판단했다.

‘남로당 중앙당 지령에 따른 폭동’이라는 주장은 검증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특히 무장봉기의 주체가 남로당 중앙당은 아니고 남로당 제주도당이 이를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의 배후설은 제주4·3사건 원인에도 거론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주4·3사건은 ‘당면한 단선 단정을 반대하는 ‘구국투쟁’이자’ 무장투쟁이었다고 한다.

태의원의 발설 논란 와중에서, 급기야 보수 여론은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 인터뷰로 번졌다. 여론은 미국CNN방송과의 인터뷰 중 “4·3사건 공산당 폭동으로 발생 양민 희생자 누명 벗겨줘야”라는 김 전 대통령의 헤드라인을 인용하여 태의원의 주장을 옹호하는 듯하다. 즉, 김대중 대통령 또한 김일성이 개입을 인정한 것이 아니냐는 투다.

1961년 출간한 에르가 카르(Carr)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엄격한 사료 비판과 사실(정확한 사료)에 충실한, 있는 그대로의 역사 서술을 강조하는 실증주의 역사관이나, 개개의 사람들이 자기중심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주관주의 역사관 모두를 비판하였다. 즉, 그는 “역사는 과거의 사실 자체로 존재하므로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는 기존의 역사관을 부정하고 있다.

그는 “역사는 사실 자체에만 함몰되는 것도, 역사가의 주관 속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 상호작용의 과정이자,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보았다.

생각건대 75년 전 좌우이념 갈등 속에서 상당수의 양민희생자가 발생한 제주4·3사건은 오욕의 역사다. 정치권의 예단보다는 국민의 상식적 판단이 우선돼야 하는 가변적 역사다.

그동안 제주4·3사건의 진위는 역사가들에 의해 서술되고, 진화되어 왔다. 소위 ‘태영호 사태’의 진위 여부 또한 역사가의 판단 몫이기에 섣불리 행정이나 정치권력이 왈가불가하는 것은 전혀 온당치 않다.

왜냐하면 “역사는 사회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그 해석과 초점을 달리 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라는 국민대중의 역사인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이점이 매우 중요하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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